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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이미재/일본, 독일의 역사반성을 보라

입력 | 2001-02-04 18:34:00


독일이 베를린으로 천도하면서 이 새 수도에 대형 홀로코스트 기념물을 세운 것은 대단히 전향적인 과거 청산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독일 국민은 이를 보며 선조들의 죗값을 끝없이 반추하게 될 것이다. 독일 정부가 최근 유태인 국제협력단체에 100억마르크의 피해 보상을 하기로 한 것도 과거 청산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독일 일각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조약의 가혹했던 보상 요구에 대한 반발로 나치가 출현했다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그런 주장을 일축하고 일관되게 청산과 반성의 자세를 보여왔다.

▼양보-보상으로 적극적 사죄▼

이미 1972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의 무명용사 묘역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나, 나치 시대의 참상을 재현해 ‘우리는 이렇게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듯한 다하우박물관을 건립한 것, 1998년 홀로코스트 피해 보상금으로 12억 달러를 제공하기 시작해 나치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양보와 보상으로 사죄의 뜻을 표명한 것 등은 역사에 충실한 독일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오늘 유럽연합(EU)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일 수 있다.

독일 정부가 홀로코스트 피해 보상금 100억 마르크를 기업과 함께 마련키로 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독일은 어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기업도 그 몫을 부담케 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몫’을 강조하고 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오늘의 독일 산업디자인이 존재하는 것도, 독일이 각 분야의 산업디자인을 양성하던 60, 70년대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투자한 결실이다. 뿐만 아니다.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노이에 피나코텍 등 대형박물관의 주요 작품들이 히포은행의 소장품을 장기 대여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독일 기업은 국가의 발전과 이익, 그리고 문화사업을 위해 상부상조하면서 수익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해 왔다.

히틀러가 유대인으로부터 빼앗은 금융재산을 비롯한 많은 물품을 전쟁비용으로 사용하고 강제노동으로 인권과 노동의 대가를 착취한 데 대한 책임을 반세기도 더 지난 오늘에 이르러 독일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독일은 직접적인 피해를 본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웃국가들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보상정책을 펴왔다.

예를 들어 외국인에게도 내국인과 같은 수준의 장학금 혜택을 주는 교육정책을 비롯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없는 임금 및 복지 혜택을 준 것이 오늘날 EU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국가로서의 친화력의 밑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가한 가혹행위에 대한 보상을 일본으로부터 거절당한 일이 있다. 단지 사죄의 표현만 가능하다는 외교적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일본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사이에 놓여 있는 ‘어두운 그늘’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아시아를 이끄는 주역이 될 수 없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동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건만 한일 관계는 늘 이렇게 ‘갈등’이다. 월드컵 명칭이 ‘한일’이냐, ‘일한’이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일본은 같은 패전국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영원한 군국주의의 잔영으로 남을 것인가. 일본은 독일의 자세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수현씨 죽음 제대로 새겨야▼

일본에서 유명을 달리한 유학생 이수현씨에 대해 일본 국민이 보여준 관심과 성의는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점이 우려된다. 그 하나가 오늘날 이기주의가 팽배한 일본 젊은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내치용으로 이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식민지에 대한 종주국의 자만의식이 발동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의 목숨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부모에게 남는 것은 아픈 가슴과 전율뿐이다.

그래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을 함께 싸안을 수 있는 빈자리가 일본인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 죽음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이 사건이 일본 정부의 생각을 바꾸는 진정한 의미의 계기가 된다면 그 죽음은 역사의 보람이리라.

(이미재 청주대 교수·섬유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