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內治)는 미지수, 외교는 합격점.’지난해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러시아 최고 지도자직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1년 성적표다.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슬로건으로 내건 푸틴 정부가 경제 개혁 등 국내 문제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지만 외교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13∼17일 쿠바 방문, 17∼20일 캐나다 방문으로 이어지는 중북미 순방으로 집권 후 쉴새 없이 계속해 온 올해의 정상 외교를 마무리했다.
러시아는 올해 오랜만에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소련 해체 후 핵강국이면서도 미국의 주도에 밀려 외교 무대에서 철저히 소외돼 오다 푸틴 대통령의 활약으로 오랜만에 어깨를 편 것이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건강 때문에 외교 활동을 거의 못했고 그나마 서방에 끌려다니는 나약한 외교를 보여준 데 반해 푸틴 대통령은 정력적이고도 치밀한 외교술을 펼치고 있다.
▼국제무대 러위상 높아져▼
그는 유고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사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의사를 밝혀 서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또 미국이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을 고집하자 “공동으로 구축하자”고 선수를 치기도 했다. 7월 북한 방문과 이번 쿠바 방문으로 그동안 소원했던 옛 소련 동맹국들을 다시 챙기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다.
내년 초에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고 리비아를 방문하는 등 푸틴 대통령의 공격적인 외교는 계속될 전망이다.
▼올 7% 성장불구 침체 지속▼
러시아 영자 일간지 모스코 타임스는 최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집권 8년간보다 푸틴 대통령이 올 한 해 동안 거둔 외교적 성과가 더 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경제 개혁의 부진 등으로 내치에 대한 평가는 아직 미지수. 올해 러시아 경제는 7% 성장해 소련 해체 후 최고의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최대의 수출품인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뿐 러시아 경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
올리가르흐(과두 재벌)와 지방 정부 등 경제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의 저항도 만만찮은 변수다.
푸틴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소련 해체로 폐지됐던 구 소련 국가(國歌)와 군기(軍旗)를 ‘과거와의 단절보다는 역사의 계승’이란 명분으로 부활시켰다. 또 국가의 문장(紋章)으로 로마노프 황실의 상징이었던 쌍두독수리를 채택했고 이전 얘기가 나오던 소련의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를 ‘붉은 광장’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과거 팽창주의 부활 우려▼
과거 강대국 러시아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국민은 이러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이 자칫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과거의 팽창주의를 부활시켜 국제적 긴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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