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알파벳을 배운 티가 나는 젊은 남녀가 이런 대화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여 “장자는 서양에 대결하는 동양의 메씨아야.”
남 “상당히 모던한 생각으로 생각되는 걸.”
여 “호호호, 나야 모던·껄 아니겠어?”
남 “근데 우리가 이렇게 랑디부하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하지....”
여 “랑디부 없는 젊음은 고목이야....”
청취소감이 어떻습니까? 저는 이것들이 미쳤나, 하고 한번 돌아볼 것 같습니다. 별 이상한 화법을 다 구사하는군, 이런 생각도 드는군요. 아, 그리고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어색하고 느끼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느냐구요? 이런 얘깁니다.
1960년 조선일보 문화면을 보니 ‘문화용어 풀이'라는 작은 상자기사를 연재하고 있더군요.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연재의 발상과 내용이 너무도 흥미로와 몇 개 주섬주섬 베껴왔습니다. 어쩌면 그 ‘문화용어 풀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외국어고, 외래어일까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자 한번 봅시다.
랑디부 : 밀회.
만날 약속을 한다든가 약속한 장소를 뜻한다. 그러나 란 복합된 외래어를 구태여 쓰게 된 이유는 숨어서 약속하고 숨어서 만나는 남녀간의 밀회를 표현해주는 우리말이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낯선말로 표현하면 덜 쑥스러워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거의 밀회란 뜻으로 국한되어 쓰이게 되고 이따금 회합 또는 교착(交錯)란(이란) 뜻으로 쓰인다.
(예 : 그 영화의 는 장면이다. 없는 젊음은 고목이다. 웃음과 눈물의 , 그 감명깊던 밤!)
모던 : 본래의 뜻은 고대에 대한 요즈음 현재 근세라는 뜻이나 그 뜻과는 달리 새로운 내용을 가지게 되었다. 즉 세련되고 현대감각이 풍기는 새 을 칭할 때 흔히 을 쓰는데 을 알고 에 능하고 나아가서는 교양이 있는 현대 지성을 가진 사람을 라고 말한다.
(예 : 저 여성은 이다. A군은 상당히 한 생각을 하고 있다.)
메씨아 : 원어 Messah=구세주
성서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서 독일의 음악가 이 성담곡(聖譚曲)의 표제로 이 란 말을 써서 널리 알려진 것이다. 기독교시대 유태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바랬던 구세주를 뜻하고 기독교에서는 를 라고 부른다. 이와같은 뜻이 전용하여 몹시 기다리웁고 바라운 사람 또는 공궁에서 구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을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 장자는 서양에 대결하는 동양의 다. 내가 몹시 궁했을 무렵 그 친구는 처럼 나타났다. 그분의 웃음은 우울하던 내 젊음의 였다.)
어떻습니까. 친절하게 예까지 들어주고 있군요. 그런데 60년이 어떤 연대입니까. 초근목피니 보릿고개니 하는 말들이 일상용어로 쓰이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 배고픈 독자들에게 ‘모던·껄'이란 잉글리시와 ‘랑디부'란 프렌치를 가르쳐야 했다니...
추신 1 : 근데 왜 느끼하지요?
40∼50대 된 남자들은 ‘츄라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트라이'도 아니고 ‘추라이'도 아니고 ‘츄라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나이좀 드신 분들이 ‘츄라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좀 느글느글하고 그렇습니다. 1960년도의 ‘문화용어 풀이'를 읽는 느낌도 그랬습니다. 독자들은 어떠하신지.
추신 2 : 1960년도의 기자는 남녀간의 밀회를 로 표현하면 덜 쑥스럽다고 그러는군요. 우습지요? 우리가 지금도 아내란 말이 뭔가 어색하여 와이프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떻습니까?
늘보letitb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