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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각예술가 고암 정병례 '아름다운 얼굴'展

입력 | 2000-09-19 18:51:00


전각(篆刻) 예술의 현대화와 다양성을 추구해온 고암 정병례(古岩 鄭昺例·53)씨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빛낸 서른 한 분의 얼굴과 어록를 돌에 새겨 ‘삶, 아름다운 얼굴’전을 갖는다.

20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내 가나아트오픈스페이스02―736―1020.

고암은 늘 새롭고 파격적인 시도로 전각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 온 장인(匠人). 한양대 국문과 정민교수는 그런 고암을 가리켜 “수백년 단단한 예술전통 속에 갇혀있던 전각이 그에게 와서는 행위 예술이 되고, 설치 미술이 되고, 생활 예술이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

92년 대한민국미술대전과 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KBS 드라마 ‘왕과 비’ 및 임권택감독의 영화 ‘창(娼)―노는 계집 창’의 타이틀을 제작해 전각 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힌 바 있다.

이번 작업은 5년전부터 구상해 온 것으로 막판 5개월동안은 집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서울 종로구 경운동 작업실에서 돌칼과 씨름을 했다. 그렇게 해서 김구 김병로 김수영 김수환 김준엽 김창숙 김홍섭 대니서 리영희 박경리 박완서 성철 신경림 신봉승 신영복 신채호 안중근 유일한 윤동주 윤극영 장기려 장준하 전봉준 전태일 정인보 정정화 조영래 권정생 피천득 한경직 한용운 등 31명(가나다순)의 얼굴과 대표 어록이 새겨졌다.

인물마다 별개의 초상인(肖像印)을 중심으로 대표적 이미지와 어록 등을 방각(傍刻) 기법으로 위와 옆에 새겨 탁본할 수 있도록 했고, 또다른 돌에는 해당 인물의 대표적 어록을 문자인(文字印)으로 새긴 뒤 측면에 작가의 조형언어로 출전을 밝혔다. 돌은 비교적 가공하기 수월한 납석을 사용했다.

김구는 ‘나의 소원’과 관련 어록, 김병로는 ‘형(衡)’과 좌우명 ‘계구신독(戒懼愼獨)’,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대표작 ‘서시(序詩)’, 김수환추기경은 ‘서(恕·용서하다)’와 강론의 일부, 성철스님은 ‘선(禪)’과 법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한경직목사는 ‘빈손’과 설교 중 한 대목, 피천득은 ‘만년(晩年)’과 그의 수필 중 한대목을 새겼다. 고암은 “닮지 않으면서도 닮도록 특징을 살려내야 하는 초상인을 새기기가 가장 힘들었다”면서 “돌에 새긴 분들의 삶을 만분의 일이라고 배우고 싶다는 턱없는 욕심과, 전각 예술의 현대적 독창성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