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은 안데스 산맥, 동쪽은 태평양을 벗삼고 있는 나라. 국토의 남단에서 북단까지가 4270㎞에 이르는 지구에서 가장 긴 나라. 한국과는 직항노선이 없어 비행기를 갈아타고 꼬박 24시간을 가야 하는 머나먼 나라 칠레.
그러나 칠레는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파블로 네루다와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과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 같은 예술가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8월초 서울에 부임한 페르난도 슈미트 주한 칠레대사 역시 문학과 미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유럽과 미주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그에게 한국은 처음 맞는 아시아 국가.
“며칠 전 한국의 작가, 평론가들과 만나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어요. 한국 문학을 아는 게 한국과 동양문화를 알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지요.”
슈미트 대사는 “한국의 음악가와 건축가들도 만나보고 싶다”면서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한국의 산과 불교문화를 보기 위해 춘천과 경주에 다녀왔다며 풍수지리를 공부해 보고싶다는 의욕도 보였다.
조금 딱딱한 쪽으로 화제를 옮겼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대통령이 처벌을 받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슈미트 대사는 “이제 칠레는 전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만큼 성숙했다”고 답했다. 그는 피노체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여론의 대세이며 군부도 재판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칠레는 한국이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국가. FTA 체결에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농수산물 수출입 문제가 난관에 부닥쳐 있다. 양국은 계절이 정반대여서 경쟁보다는 오히려 보완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상품은 칠레에 들어올 때 일본(7.7%) 대만(8.1%) 등 경쟁국들보다 훨씬 높은 8.9%의 관세를 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그란 뿔테 안경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자상한 외모를 가진 슈미트 대사의 취미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장남 테오도르(16)는 시간만 나면 한국 친구들과 농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
슈미트 대사는 “집에서는 테레사(2)를 돌보는 재미로 산다”면서 “아이들이 많아 때때로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함께 지내고 대화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슈미트 대사는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식을 많이 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한국 불고기의 명성을 확인했다는 그는 양국관계의 전망을 ‘김치와 칠레산 와인의 멋진 조화’로 비유하기도 했다. 슈미트 대사는 마지막으로 “한국이 너무 좋아져 떠나기가 싫어질까봐 걱정”이라며 넉살스레 웃었다.
taylor55@donga.com
▼주한대사관 가을맞이 문화행사 풍성▼
주한 미국대사관과 영국대사관, 독일문화원 등이 다양한 가을 맞이 행사를 마련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는 10월 13일과 17일, 21일 오후 7시 30분 윤이상(1917∼95)작곡, 하랄드 쿤츠 각본의 오페라 ‘심청’이 공연된다. 독일문화원(02―754―9831∼3)은 10월 25일부터 고교생 이상 한국인을 대상으로 독일 가곡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10월 1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크누아홀에서는 보컬 아스티트 겸 시인인 이자벨라 보이머의 공연이 펼쳐진다.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이달 28일과 29일 국제 단편영화축제인 독일 오버하우젠 영화제의 올해 수상작인 오스트리아의 ‘이방인’ 등이 상영된다.
영국대사관은 11월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대영박물관 소장작품을 전시하는 ‘한국갤러리’를 개설한다. 로버트 앤더슨 대영박물관장은 이에 앞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계 박물관의 개요와 대영박물관의 사업을 소개하는 특별 강연을 한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달 21일부터 ‘정보화시대의 미국 문화’를 주제로 매주 목요일 강좌와 토론회를 개최한다. 참가 문의는 한국 영어영문학회 02―738―1198.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은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운니동 공보문화원 건물 2층 실크갤러리에서 일본인형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70점의 일본인형 작품이 14개 주제로 나뉘어 전시된다.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은 19∼25일 강원 속초 문화예술회관에서 ‘히브리 문자의 예술’ 전시회를 갖는다. 또 27∼29일에는 경기 수원 협성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10월18일∼11월5일 서울 금호미술관에서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도예작가인 야엘 아츠머니 초청 도예전이 열린다.
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