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가장 민감한 정치인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때로는 여야를 떠나 언론을 ‘공동의 적(敵)’정도로 생각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뭔가 ‘공동의 이익’이 전제가 됐을 경우일 것이다. 선거에 관해 불공정 보도를 한 언론인에게 1년까지의 업무정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여야 합의내용은 바로 그런 사례다.
언론의 뒤늦은 보도로 논란이 일자 여야는 재론해 보자는 선으로 후퇴했다지만 이런 내용은 자유민주 국가에서 유례가 없는 위헌적 발상이다. 언론의 자유는 중요한 국민 기본권의 하나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특히 우리 헌법은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도록 분명히 못박고 있다.
우선 위헌적 내용을 선거법에 넣도록 국회에 권고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처사를 납득할 수 없다. 방송의 경우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방송법 21조에 의해 ‘1년 이내의 출연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돼 있는 반면 신문은 이런 제재규정이 없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게 선관위측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방효과 차원에 그치지 않겠느냐고 대수롭지않게 여기는 선관위 관계자의 ‘희망적 관측’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그동안 언론이 방송법 21조의 독소적 성격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이를 기화로 국회가 슬그머니 신문에까지 확대하려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이번 발상에 투영된 의원들의 의식수준 역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당내 여과과정도 없이 ‘당론’으로 정했다고 우기는 정치개혁특위 국민회의측 간사인 이상수(李相洙)의원도 그렇거니와 “언론자유 침해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는 한나라당 간사 신영국(申榮國)의원의 무감각한 변명은 참으로 어이없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당지도부도 모른채 일개 특위 간사끼리 어떻게 ‘합의’할 수 있는가.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는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의 ‘먼산 불보기’식 논평 또한 저의가 의심스럽다.
불공정한 선거보도는 현행 선거법과 형법으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다는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선거법의 공정보도의무를 비롯해 반론보도청구권,허위왜곡 보도논평금지, 허위사실 공표죄, 후보자 비방죄와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등이 그런 예다. 여기에 ‘1년간 업무정지’까지 보태겠다는 발상은 이중(二重) 내지 다중(多重)처벌하겠다는 횡포나 다름 없다. 그것도 사법부가 아닌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수 있는 형태의 기구에 맡기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