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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룡의 환상세계]「로보트 태권V」부활의 요건

입력 | 1999-08-01 19:21:00


30∼40대의 어른들의 어린시절을 꿈으로 채워주었던 ‘로보트 태권V’.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라는 주제가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두팔을 곧게 앞으로 뻗으며 태권V의 흉내를 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76년 김청기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18만명(서울관객)을 동원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비록 일본 애니메이션인 ‘마징가 Z’의 모티브를 차용했다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우리도 일본 못지않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자존심을 세워준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향수어린 기억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로보트 태권V’가 새로 제작된다고 한다. 스튜디오V는 8년간 200여억원을 들여 TV시리즈 2편과 극장용 2편을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1단계로 TV시리즈에 착수해 22분짜리 에피소드 26편을 만들고, ‘태권V’탄생 25년을 맞는 2001년엔 극장 장편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청작업 위주여서 우리 것으로 내세울 작품이 별로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창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과연 2000년대에 ‘로보트 태권V’를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로보트 태권V’는 ‘기술만능주의’ ‘인간경시’라는 낡은 가치관의 토대 위에 서있다는 점에서 장래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태권V가 수많은 적을 무찌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태권V가 강했기 때문이다. 태권V가 강한 이유는 바로 적을 능가하는 ‘기술력’이었다.

조종사인 사람의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태권V는 ‘철이’가 조종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철이의 조종실력이 뛰어나서 전투에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권V의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누가 조종을 하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태권V같이 성능이 뛰어난 특수 로봇이 등장하면, 인간이 개제될 여지가 별로 없다. ‘인간 드라마’가 탄생하기 힘든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환상이 깨진 현대 사회에 ‘기술만능주의’적인 내용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