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포함한 서방 19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
TO)가 창설 이후 처음으로 시도한 주권국가에 대한 합동공격이 사실상 끝났다.
사실 발칸전쟁은 유고의 무조건 항복보다는 NATO의 공습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수습하며 알바니아계 코소보난민 귀환을 보장할 수 있는 선에서 탈출구를 찾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결국 내부논란으로 흔들리던 NATO, 버티기 작전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대통령의 이해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철군협정이 맺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1만5000명이 넘는 인명피해와 100만명이 넘는 난민을 양산하는 등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밀로셰비치가 당장은 살아남아 여전히 불씨는 살아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번 전쟁은 유고연방의 자치주였던 코소보주내 알바니아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됐다. 유고가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주민을 집단학살하는 등 탄압하자 세계여론이 들끓었다.
서방은 2월 프랑스 랑부예에 유고와 알바니아계 대표를 불러모아 유고측에 평화협정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랑부예안은 코소보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해 3년간의 잠정자치를 거친 뒤 주민투표로 코소보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내용. 코소보를 성지(聖地)로 여기는 세르비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결국 3월24일 NATO는 창설 50년만에 처음으로 주권국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명분은 인권보호. 중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91년 걸프전과는 달리 주권이 아니라 인권보호라는 새로운 명분이 전쟁을 불러온 것이다.
유고는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수십만명의 난민이 남이 일으킨 전쟁때문에 고향을 등져야 했다. NATO의 보호대상이 피해자가 된 것이다. NATO는 결국 명분을 난민들의 안전귀환으로 바꿨다.미국이 코소보의 뿌리깊은 역사를 간과한 채 단기간의 공습만으로 유고를 굴복시킬 것이라는 미숙한 판단으로 공습을 시작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은 “도대체 인권이 뭐기에 한 나라의 경제를 괴멸시킬 수 있느냐”고 미 행정부를 질타했다.
코소보 난민들은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간다. 과연 어떻게 그들에게 집과 도로 교량 등 사회간접시설을 마련해 줄 것인가.
NATO의 공습으로 종교와 민족이 달라 수세기 동안 반목해온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인들의 상대방에 대한 증오는 훨씬 더 심해졌다. 코소보가 쉽게 평화를 찾을 수 없는 커다란 걸림돌이다.
국제사회에도 후유증을 남겼다. 유엔은 이번에도 뒤치다꺼리만 맡는 등 힘을 쓰지 못했다. 러시아 및 중국과 미국의 갈등도 노출됐다.
분쟁에 개입하더라도 피는 흘리지 않으려 한다는 NATO의 전략도 드러났다. 유럽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분쟁에는 소극적이라는 약점도 나타났다. 21세기 새 국제질서를 모색하는 NATO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