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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진애/저성장시대의 서울 도시계획

입력 | 1998-11-23 19:19:00


서울시에는 도시계획위원회라는 ‘막강한’ 위원회가 있다. 구의회, 구 도시계획위원회, 시의회를 거친 이후에 시장 결재 바로 전단계에 있는 심의과정이다. 통상 형식적인 위원회들이 많지만 이 위원회는 정기적으로 수많은 현안들을 다룬다.

도시의 기본틀과 시민의 삶을 가름하는 중차대한 현안들이다. 재개발사업, 용도지역변경, 지구해제나 지구지정, 도로 신설과 확장, 공원, 교통시설, 하부시설의 결정, 모든 기본계획 등. 거기에다 개발이권이 걸려있고 희비가 엇갈리는 만큼 치열한 로비가 있다. 민원 역시 엄청나다.

▼ 이기적 민원 가려내야

서울시 직원들은 도시계획위원회를 ‘최후의 보루’라 부르곤 한다. 개발업자들은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구청은 ‘골치아픈 기구’로, 의회는 ‘곱지않은 기구’로 본다고 한다. 시장에게는 개발 압력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역할도 한다. 이런 역할은 특히 민선자치시대 이후 각 구의 규제 풀어주기와 상업지역 확보 경쟁, 드세진 민원인, 또한 민원에 약한 의회 덕분에 더욱 심해졌다. 위나 밖에서의 압력은 줄어든 반면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커진 것이다.

그런데 그 아래란 결코 일반 시민들은 아니다. 이권이 걸린 민원인이다. 고통받는 민원인도 있지만 대개 땅값을 올리거나 개발하겠다는 민원인 또는 그 대변인이다. 이들은 이권이 걸린 만큼 풀릴 때까지 온갖 수단을 끈기있게 동원하는, 소위 프로들이다. 선진사회처럼 해당지역 주민보다 주변 시민들의 의견이 청취되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은 당장의 결정이 무슨 영향이 있는지 잘 모르고, 시민단체들의 견제활동은 아직 미미하고, 공무원들은 민원에 약해 소신있게 거르지 못하고 결국 의회나 위원회에 회부한다. 의회는 정치적인 입장이 강하고 구 도시계획위원회는 자기 구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최후의 보루’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 튼튼하지 못한 보루다. 거부해도 또 올라오고 정황을 호소하며 통과를 요청하곤 한다. 더구나 위원회 구성상 시의회 위원들, 구청장, 서울시 당연직 위원들이 세게 밀어붙이면 그 어느 것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니 이 최후의 보루 역시 약하기 짝이 없다. 필자는 2년7개월간 도시계획위원회에 봉사했다. 6월 대규모 ‘전용주거지역 해제’ 통과를 계기로 나는 사임했다. 거품개발시대에도 어렵사리 지켜왔던 사안이고 위원들 대다수도 반대했던 사안이 두달만에 결국 통과된 것이다. 그것도 신임시장 취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추가 보완자료 요청과 취임 후 결정 요청에도 불구하고 14명의 투표자 중 단 2표차로 통과돼버렸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 언제까지 도시가 이기적 민원과 정치적 타협에 의해 만들어질 것인가. ‘정치’와 ‘이권’ 앞에서 ‘시민의 도시권리’ ‘합리적 전문성’을 무기력화해야 할 것인가. 이권이 걸려있는 각계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전체를 희생할 것인가. 도시가 자꾸 나빠만 진다고 시민들이 개탄하게 내버려 둘 것인가…. 하물며 민원인이나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나 다들 개인적인 시민 입장이 되면 잘못된 도시계획을 탓하고 지나친 개발이기주의를 탓한다.

이젠 결코 거품개발시대가 아니다. IMF 체제이후 도시는 저성장시대로 들어섰다. 이제는 용도지역을 풀어준다고 해서 땅값이 올라가지도 않고 토지거래가 되는 것도 아니며 공연히 공시지가만 올라 세금만 많아진다. 사업지구로 지정해준다고 개발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긁어부스럼을 만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주민들만 늘어나고 민원은 많아지고 경제는 더욱 침체될 수 있다. 서울시의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 또한 상업지역 변경 후에 오히려 침체된 지역이 허다하다.

▼ 경제-환경효과 고려를

거품시대의 개발관성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거품개발을 조장해서 경제와 환경을 동시에 망치지 말자. 건강한 경제운용과 도시환경의 질을 높이는 진짜 경쟁력있는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시장경제상황은 바뀌었는데 여전히 지난 거품시대의 개발촉진책이 효과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주민들 역시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시는 행정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품시대부터 추진했던 사안들이라 해서 그대로 굴러가게 하지 말라. 통과를 능사로 보지 말라.

철저하게 재점검하여 경제와 환경에 대한 효과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도시도 살고 경제도 산다. 이 저성장시대에 걸맞은 도시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김진애(도시건축가/서울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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