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북풍이 몰아치는 시베리아에서 인류의 주식 밀을 재배할 수 있을까’
최근 고려대 생명공학원에서 열린 ‘생명공학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스미소니언 재단의 테리 샤라교수는 “캐나다 북부지역 같은 지구상의 한랭지역에서 밀을 재배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2천4백만㎢에 달하는 시베리아 지역의 30%에 해당하는 8백만㎢를 밀 곡창지대로 만드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현재 이들 지역에는 겨울귀리를 소량 재배하고 있을 뿐 지독한 추위로 그밖의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꿈도 못꾸고 있는 실정. 그런데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까.
이른바 ‘파밍 테크놀로지(Pharming Technology)’. 농업을 뜻하는 ‘Farming’과 약물학·유전학 등을 의미하는 접두사 ‘Pharm∼’의 합성어로 농업에 유전자 변형과 이식 등 유전공학을 도입한 새로운 학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어느정도 대중화된 이 신학문은 인류의 식량난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분야.
농업 생산성의 증대를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염색체를 조작해 광합성을 촉진시키는 것. 안테나처럼 생긴 염색체의 꼬리부분을 여러 개 증식시키면 광합성이 원활히 일어난다. 한랭지역에 밀을 심는 것도 같은 원리.
미국에서 있었던 실험을 예로 들자. 옥수수는 풍부한 빛이 없으면 잘 자라지 않아 빽빽하게 심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가로 5인치(약12.7㎝), 세로 40인치(약1백1.6㎝) 간격으로 심는 게 보통. 연구진은 염색체 조작을 통해 광합성을 촉진시키는 데 성공, 이 간격을 가로, 세로 각각 5인치로 줄였다. 종전에 1에이커(약1천2백24평)에 1백20부셀(약3.2t)에 그쳤던 생산량은 1천∼1천5백부셀(약27.2t∼약48.2t)로 늘어났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농업의 대혁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빛이 없어도 자라는 식물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8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있었던 실험. 반딧불이의 발광 유전인자를 담배에 이식한 결과 담배 내부에서 반딧불이의 발광인자가 활동해 어둠 속에서도 담배가 성장할 수 있었다.
‘파밍테크놀로지’는 이밖에도 박테리아를 이용한 아그로박테리움법, 원형질세포를 새로 형성하는 원형질세포법, 적재적소에 조작 유전자를 배치하는 입자총법 등 점점 다양화하는 추세.
사람의 단백질을 식물에서 생산하기도 한다. 인체의 혈액에 흐르는 헤모글로빈이라는 효소는 알파글로블린과 베타글로블린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버지니아의 한 연구소는 이중 알파글로블린만을 담배에 이식, 헤모글로빈을 합성해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터루킨 식스’라는 항암효소를 같은 방식으로 얻기도 한다.
현재 식물에서 유전자 이식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인체단백질은 앤티트립신을 포함해 6가지 정도. 그러나 1백여가지는 더 추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대전의 생명공학연구소 등 일부 연구소에서 ‘파밍테크놀로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미국처럼 대규모 실험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막대한 비용 때문이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