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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명석/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

입력 | 1998-10-19 19:31:00


아시아 경제위기는 세계 금융자본시장의 자유화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앞으로는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세계화도 필연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다.

작금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각종 정책을 둘러싸고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자유경쟁과 평등주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가치들이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자리를 굳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보편저 세계주의 목표 ▼

그러나 말레이시아 등 일부 아시아 국가는 ‘경제 부국들이 빈국들에 대해서만 거래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헤지펀드를 아시아에서 발생한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는 돈을 지배하는 서방세력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단 한가지 목적아래 ‘독재적 자본주의’로 세계를 지배하려 든다고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리콴유(李光耀)전 싱가포르총리도 각 나라는 나름대로의 통치 형태를 찾아야 한다면서 아시아적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 등급 전망을 낮춰 금융시장의 불안이 야기되다 일본정부와 금융계가 발끈해 무디스에 대해 역(逆)평가에 착수하는 등 서구적 논리와 일본식 논리가 충돌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이제‘지구촌 경제’는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인류는 자립주의나 고립주의로 회귀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편적 세계주의는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 하겠다.

인도의 간디도 인류가 지속적으로 지향해온 목표는 보편적 세계주의를 기반으로 하나의‘범세계적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보편적 세계주의가 서구화, 즉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의 대립에서 서구적 가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편적 세계주의를 기반으로 한 범세계적 문화의 건설에는 반드시 몇가지 논의가 수반돼야 한다.

첫째, 범세계적 문화란 하나의 획일적 문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각 문화는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창조적 예지를 발휘하면서 범세계적 문화 건설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이 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다. 풍습 관례 생활양식 의복 등과 같은 부수적이고 피상적인 것들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하지만 인간은 똑같은 차원의 존귀한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을 갖기 때문에 동(東)과 서(西)가 다르다고 하는 것은 단지 피상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미국작가 펄 벅도 말했듯이 동이 서보다도 반드시 더 정신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서가 동보다 더 물질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인간들은 굶어 죽는 것보다는 먹고 살기를, 집없는 것보다는 집 갖기를, 질병보다는 건강을, 단명보다는 장수를, 슬픔보다는 행복을 바란다.

셋째,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은 공통적이다. “서양적 가치건 동양적 가치건 전 인류에게 참된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퇴화할 것이다”라고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애들러교수(하와이동서문화센터)는 말한다. 보편적 진리는 여러 습속과 가치관을 초월해 두루 적용되는 것이다.

넷째,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외부세계에 대해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범세계적 문화권에서 효율적으로 위기에 대처하려면 인간지성을 재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래야만 마찰없는 하나의 범세계적 문화를 가능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상호보완 경쟁 거쳐야 ▼

다섯째, 개인처럼 문화도 끊임없는 주도권 경쟁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군사적 강권이나 시장경제라는 미명하에 독재적 자본주의가 판을 친다든지 문화적 우위나 침략주의를 강요해 저질문화가 양질문화를 구축한다든지 하면 모든 인류는 문화적으로 병들고 퇴폐해질 것이다.

요컨대 범세계적 문화의 형성은 각 문화가 자기 문화의 특성을 보전 보완하고 창조성을 개발하면서 보편적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큰 흐름에 적극 동참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명석(단국대 교수·문화간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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