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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육정수/땅에 떨어진 판사위신

입력 | 1998-03-25 19:59:00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가 재판관 앞에서 한 최후진술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그는 고대 그리스가 공인하는 신(神)을 부정,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혐의로 기소돼 기원전 399년 독약을 마셨다.

“재판관 여러분은 내가 죽은 뒤 내가 뒤집어쓴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제우스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해명해야 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장담합니다. 여러분을 고발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관의 자세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이렇게 갈파했다. 그후 수많은 재판관이 동서고금의 역사를 거쳐갔지만 그의 진술내용은 불변의 진리로 살아있다. 의정부지원 판사비리사건도 소크라테스의 예언이 들어맞은 하나의 예다. 부패한 일부 판사가 남을 심판하는 위치에 있다가 만천하에 고발당한 것이다.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街人 金炳魯)는 ‘법관의 몸가짐론’으로 법조인에겐 스승같은 존재다. 청렴과 강직, 의연한 자세는 그에게 항상 붙어다니는 품성이었다. 그는 법관의 몸가짐이야말로 사법부 독립의 결정적 요소로 생각했다. 그의 올곧은 자세가 이승만(李承晩)정권의 갖은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과 권위를 지켜낸 원동력이었다.

첫째, 법관은 의심을 받아서는 안된다. 의심을 받게 되면 그 자체로 최대의 명예손상이 된다. 둘째, 음주를 조심해야 한다. 법관이 술을 마시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면 낙담을 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유인돼 업무에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셋째, 마작 화투 등 유희는 법관의 위신상 절대 불가하다. 가인은 특히 “법관이 청렴성을 지키지 못하겠다면 사법부의 위신을 위해 사법부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오늘의 판사들은 사법부를 지킬 자신과 자격이 있는가. 상당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판사비리사건으로 의정부지원 38명의 판사 전원이 교체되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국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본질을 비켜간 눈가림이었던 탓이다.

그후 해당 법원에선 지원장을 포함한 판사 전원이 변호사 접촉을 피하기 위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보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은 아닌지.

요즘같은 세태에 판사만 깨끗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 아니냐고 세태론을 들고 나와 항변하는 판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럴듯한 얘기다. 그러나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회의 소금역할이 판사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다면 가인의 요구대로 사법부를 떠나는 것이 옳다. 변호사가 되면 자기 돈으로 골프도 치고 룸살롱에서 비싼 술도 마시며 풍족하게 살 수 있다. 변호사 개업후 전관예우나 받기 위해 잠깐 사법부에 붙어있을 생각이라면 국민을 속이는 짓이다. 변호사로부터 1천만원 가량의 돈을 받은 판사들을 관행이란 이유로 징계 요청하는데 그친 검찰도 딱하다. ‘포괄적 뇌물죄’ ‘구체적 청탁관계’ 등 마치 암호같은 표현을 조합해 면죄부를 준 데 대해 국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역시 법의 세계는 민초(民草)와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을 다시 확인시켜준 셈이다. 한 단체는 관련 판사들의 탄핵소추를 국회에 청원하겠다고 한다. 빗나간 판사들의 망신은 끝이 없다.

육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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