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北風)사건의 초기과정에서 수세를 보였던 한나라당측이 여권에 대한 본격적인 ‘맞불작전’에 나서면서 북풍정국이 한치앞을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한나라당은 ‘북풍공작 비밀문건’에 나타난 여권핵심 관계자들의 대북(對北)접촉의혹을 고리로 이 사안을 ‘사상논쟁’으로까지 몰고 갈 기세다. 23일 한나라당 의총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사상문제까지 겨냥, 직격탄을 퍼부은 것이 한 예다.
이런 강경자세의 밑바닥에는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또 비밀문건 유출직후 여권이 보인 ‘대야(對野)압박전략’에 대한 반발이 거꾸로 야당을 응축시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모순적인 대응을 초래하고 있는 측면도 적지 않다.
전술적으로 보면 한나라당의 자세전환에는 북풍공작 비밀문건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안기부의 북풍공작과 한나라당의 연결고리가 별 것 아니다’라는 안도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한 핵심당직자는 “정재문(鄭在文)의원의 공작자금 전달의혹이 유언비어식 전문(傳聞)이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며 “여권이 이를 ‘야당 손목비틀기’식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야당의 한 정보위관계자도 “북풍공작 개입의혹을 받고 있는 L의원의 경우 비밀문건에는 북측 관계자가 ‘입북사실을 알고 있느냐’라고 공작원에게 말한 대목밖에 기록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여권관계자들에 대한 의혹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만큼 전선을 확대해도 손해볼 것은 없다는 게 야권의 판단이다.
한나라당의 북풍진상조사위는 이날 의총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재미교포 윤홍준(尹泓俊)씨의 기자회견내용도 검찰발표처럼 날조된 것만은 아니라며 윤씨에 대한 면담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한나라당의 태도에는 여권이 정치적 부담 때문에 북풍수사를 정치권으로 확대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특히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의 자해사건은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여권핵심부의 대북접촉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또다른 파일의 존재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새로운 파일의 입수를 위한 ‘물밑작업’에 나설 채비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고민은 아직 본격적인 역공에 나설 만한 증빙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풍공작의 실체가 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 아니냐’며 신중론을 전개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여권의 성급한 대응이 당내분란에 시달릴 뻔한 야당에게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