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으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 위기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학계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이제 학자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21일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 특별학술회의(동아일보 후원)‘한국 정치경제의 위기와 대응―김영삼정부의 평가와 김대중정부의 과제’는 학계 및 일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1부와 제3부에서는 김대중정부의 과제에 대한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김영삼정부의 평가가 이뤄졌고 제2부 ‘경제위기의 원인과 대응’에서는 정치학술회의에 이례적으로 경제학자까지 참여, 재벌개혁과 동아시아 성장모델의 지속 가능성 등을 주제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민주주의 심화와 정치개혁(서울대 안청시·安淸市)〓한국 민주주의는 미완의 과제를 안고 있다. 제도나 형식적인 민주화가 사회적인 영역에까지 파급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정권들은 민주주의를 문화적 정향으로 확립할 수 있는 공동체의식과 정체성을 수립하는데 실패했다.
최근 IMF위기로 인해 국민정서는 엘리트와 집권세력을 향한 분노로 표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생산성 있는 정부개혁, 솔선수범하는 올바른 정치리더십만이 이러한 ‘신뢰의 위기’를 해소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다.
▼국가기구의 제도적 특성과 행정개혁(서울대 정용덕·鄭用德)〓우리나라 국가기구는 정책 능력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료주의의 극대화를 기하는 방향으로 제도화가 이뤄져왔다. 김대중정부도 마찬가지로 기존 국가기구의 제도적 속성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유지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져들 가능성이 더 크다.
개혁의 가능성은 두가지다. 첫째는 IMF체제 하에서 외부로부터 강요된 제도개혁이다. 이는 ‘한국 경제, 망해야 산다’는 역설에 따른 것이다. 둘째는 행정개혁을 위해 자발적으로 국가 정책능력과 자율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지방자치제도의 개혁과 정착(국민대 김병준·金秉準)〓선거기간중 지방자치와 분권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정부도 집권후에는 ‘자치경찰제’를 비롯해 상당수의 공약이 흐지부지돼가는 경향이 있다.
현재 국가 업무중 중앙정부가 처리하는 비율은 73%에 달한다. 재정력도 중앙에 집중돼 자치단체는 지방의 행정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지방의원 수를 3분의1로 줄이고 유급제도를 시행, 보다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민정부’ 대북정책의 반성과 ‘국민의 정부’의 신대북정책 추진방향(가톨릭대 박건영·朴健榮)〓김대중정부는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북한과 마찰을 빚을 우려가 있는 통일후 사회체제에 대한 정책 논의보다는 우선 남북관계 정상화가 급선무다. 이를 위해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연계전략보다는 ‘얻을 수 있는 것부터 얻자’는 점진적인 교류협력에 힘써야 한다.
▼토론(동아일보 김재홍·金在洪논설위원)〓새 정부의 민간주도 대북교류 정책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목표를 얻기 위한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자유주의 사회의 특성이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당국간 협상후 민간교류가 이뤄진 동서독 방식에서 당국간 합의이전 교류협력 활성화로 전환하겠다는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개혁은 중국―대만간 모델에 바탕한 것이다.
〈정리〓이광표·전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