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흑백사진 한장이 있다. 통좁은 바지를 입고 아름드리 소나무에 몸을 기대어 한껏 우수어린 표정을 지은 더벅머리 청년. 그러나 그 우수의 청년이 신은 까만 양말 하얀 고무신에 시선이 이르는 순간 사진을 보던 사람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촬영연도 69년. 걸핏하면 몸안에 열이 들끓어 흥분하다가도 또 한없이 진지해지던 스물한살의 사진속 청년 김용택은 어느새 지천명을 맞은 시인이 됐다. 쉰살의 그가 불현듯 옛사랑 ‘그 여자네 집’(창작과 비평사)을 노래한다.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있는 집/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있을/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나이 쉰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는 첫사랑이지만 그 여자의 얼굴은 또렷이 그려지지 않는다. 대신 ‘봄이면 하얀 살구꽃이 떨어지던 그 여자의 물동이’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나면 그 여자의 아버지와 오빠가 노랗게 지붕을 이던 초가집’ ‘그 여자의 등과 김칫독에 떨어져내리던 목화송이같던 하얀 눈’ ‘마당에 햇살이 노랗고 저녁연기가 곧게 올라가고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그 여자의 집’처럼 연인이 담겨있던 사계절의 고향풍경이 그 여자의 눈과 코 입을 대신한다. 왜일까. 그 답은 어쩌면 오래전 김용택이 썼던 다른 시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고맙게 배웠습니다/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시집 ‘맑은 날’중 ‘사랑’)
그러나 여자는 열아홉살에 고향을 떠났고 내 마음속에 지어진 그 여자의 집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사랑이 떠나간 뒤 고향에 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 여자와 함께했던 시절만큼 빛날 수 있었을까.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생각이 그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생각인지요’(‘쓰잘데기 없는 내 생각’중)라고 시인은 잠시나마 겸연쩍어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도 온 가슴으로 껴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그의 고백이, 고향의 그 여자를 잃어버린 뒤 ‘자연의 시계도 잃어버렸다’는 문명인으로서 그의 아픈 성찰이 어찌 쓸데없는 생각이기만 할까.
첫 시집 ‘섬진강’(85년)을 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섬진강 상류의 고향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시인. 그의 소망은 평생 농부였던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농부와 시인’중) 사는 일이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