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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영화-가요 「개방노크」 『막을수도… 확 열수도…』

입력 | 1998-03-14 07:53:00


《“문화쇄국주의만큼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없다.”(1월 김대중차기대통령)

“정부는 새 내각 출범후 일본대중문화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2월말 정부관계자)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대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긍정적 검토를 하고 있다.”(3월 신낙균문화관광부장관)

이제 일본 영화 가요 개방이 ‘시간 문제’로 다가왔다. 한일 어업협정 분쟁으로 한동안 주춤거리던 이 문제는 21일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외상이 방한, 외교현안과 함께 대중문화개방문제까지 논의할 계획이어서 조만간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법이 막고 있는 일본대중문화는 △일본 극영화의 수입 배포 △일본배우의 한국영화 출연 △국내에서의 일본어 가창 △음반 코미디 연예물의 수입 등이다. 이같은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에 대해 우리 영화계와 가요계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문을 활짝 열기 전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며 우리 대중문화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 영화 ▼

지난해 3백만 관객을 끌어들인 일본영화 ‘실락원’을 두고 국내 영화가가 이상한 알력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영화가 곧 개방되리라 예상한 한아미디어측이 9월말 대금을 후불키로 하고 ‘실락원’ 판권을 확보하자 합동영화사측이 원작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장길수감독에게 한걸음 빨리 영화화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일본영화개방이 이미 우리 극장 문까지 밀고 들어온 핫이슈가 됐음을 실증하는 예다. 일본영화는 끊임없이 우리 영화계를 탐색해왔으며 국내 영화인들도 일본영화판의 문을 은밀하게 두드려왔다. 몇몇 영화마니아들은 비공식루트로 들어오는 일본영화에 만족하지 못해 일본극장까지 원정가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한 일본영화의 국내 공식상영은 96년 부산국제영화제로 기록된다. 안성기 주연의 일본영화 ‘잠자는 남자’ 등 15편이 첫 상영됐다. 지난해는 칸영화제 대상수상작 ‘장어’(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베니스영화제 대상작 ‘불꽃놀이’(기타노 다케시 감독)가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폭발적 인기를 끌었으며 화제작 ‘함께 춤추실까요’ 등 18편의 일본영화도 적잖은 관객을 모았다.

‘일본영화의 중흥’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과연 언제까지 우리관객에게일본영화를못보게해야 하느냐’‘과연 수입금지해야 할 일본영화란 어떤 것이냐’는 경계선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사무라이영화 ‘장군 마에다’와 일본어 대사가 나오는 ‘가정교사’가 미국이 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당당히 수입 상영된 것이 95년 일이었다. 그러나 20세기폭스사의 일본색 짙은 ‘파워 레인저’, 중일 합작 ‘미완의 대국(對局)’은 물론 김수용감독의 한일합작품으로 일본상영 때 화제를 모았던 ‘사랑의 묵시록’은 수입불가판정을 받았다.

이같은 혼선 속에 기민하게 ‘언젠가는 닥칠’ 일본영화 개방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십수년간 도에이영화사의 애니메이션 하청을 맡아온 대원동화측이 수입계약한 일본만화가 적지 않으며 대기업들과 중소 수입사들이 ‘언제라도 돌릴 수 있도록’ 확보해 둔 필름이 상당하다. 심지어 “우리끼리 사재기 과열경쟁을 벌여 일본영화 값만 올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우려도 높다.

이같은 현상들은 일본영화 개방이 머지않아 닥칠 현안이며 이제는 개방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일본영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때임을 일러준다.

영화계에서 의외로 전면적 개방론을 주장하는 영화인들도 적지않다.

평론가 강한섭씨는 “일본영화를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영화는 홍콩처럼 뚜렷한 대중적 장르나 스타가 없으며 할리우드영화처럼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다만 고급대중영화와 동아시아적 예술영화의 안목을 배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본영화산업의 엄청난 제작환경을 고려,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일본에서는 연간 장편 극영화가 2백∼3백편씩 제작되고 편당 평균제작비 및 영화관객층이 우리보다 3배 이상 된다. 미개봉 비디오용 영화만 3천∼4천여편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제작 배급 극장운영 등 필름 유통경로를 체계화한 메이저 제작사가 방송프로그램과 비디오까지 만드는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 내 직배사를 설립한다면 할리우드 직배사 못지않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낼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같은 입장 차이 속에서 현재 정부와 여당정책위의 입장은 단계적 개방으로 모아지고 있다.

문화관광부 남인기문화정책국장은 “여론조사 결과 96년까지는 60∼70%가 개방을 반대했다”며 이는 한일간 미묘한 관계와 국민정서가 여전히 무시 못할 요인임을 일러준다고 말했다. 그는 “개방은 하되 작품을 선별하는 위원회 형식을 두어 일본색 범람을 조절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단계적 개방은 영화인들도 동의하고 있다. 이춘연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낯뜨거운 일본영화 베끼기는 대중이 일본영화를 원천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개방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연구소의 김혜준실장은 “일본영화가 수십년간 봉쇄돼 왔으므로 개방초기에는 그간 묶여있던 일본 고급 대중물들이 파상공세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며 “개방의 실리를 얻으려면 제작측면에서부터 합작 및 쿼터제(교환상영) 시행 기간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본영화개방이 전국개봉관 상영만 의미하지 않음을 상기해야 한다. 개봉관 한 곳에서 상영한 후 비디오 배급, 공중파 유선 및 위성방송 공략,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공세 등이 퍼져나가면서 일본 스타들의 한국 내 지명도가 할리우드 스타 수준으로 오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에 호감을 갖는 세대와 식민지 경험세대의 갈등 등 사회문제가 일 것에 대비해 다각도의 정책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권기태기자〉

▼ 가요 ▼

이미 깊숙이 들어온 일본대중음악. 개방 여부를 둘러싸고 오락가락하는 정책. 은밀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음반계. 일본대중음악을 둘러싼 한국 가요계의 현주소다.

음반계는 그러나 개방문제는 시기와 방법만 남았다고 보고 있다.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 그룹 ‘스피드’ 등 일본 가수들이 한국에서 만만찮은 인기를 구가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지난해 해체한 일본 록그룹 ‘X저팬’의 음반은 한국에서 20만장이 넘게 팔렸다. 물론 비공식 경로를 통한 것이지만 그 규모는 히트곡에 버금가는 수준.

가요계에서는 일본대중음악의 수입을 대비한 물밑 접촉을 적잖게 벌여왔다. 라이브 클럽은 일본 기획사와 손잡고 5월부터 강산에 리아의 오사카 콘서트를 여는 것을 계기로 개방이 되면 일본 가수의 한국 공연을 추진할 계획이다.

저작권 관리를 대행하는 음악출판사 기린도 이미 수십만곡에 달하는 일본가요에 대한 저작권관리대행 계약을 해놓고 있다.

음반 프로덕션들도 소규모로 음반출시를 준비중이다. C기획사는 국내 중년 가운데 엔카팬이 적지 않아 엔카 음반의 판권에 접촉중이라고 밝혔다.

일본가요 개방에 대한 음반업계의 전망은 엇갈린다. 가요는 팝보다 훨씬 우위에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있어 우려할 바가 없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일본의 탁월한 음반비즈니스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경계도 나온다. 예쁘장한 일본 아이돌가수들이 우리 10대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고질병인 표절 행위를 근절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영화든 음악이든 개방은 필연적”이라면서도 “양국의 특수한 역사 관계와 철저한 국가간 비즈니스를 고려한 마스터 플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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