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가 무산될 상황에서 17일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는 폭락,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끝없이 증폭됐다.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강구하기보다 서로의 잘못이라는 책임전가식 발언을 계속했다. 그러나 금융개혁위원회 경제연구소 외국계 증권사 등의 관계자들은 현단계에서 금융위기를 탈출하려면 『우선 정부차원에서 외국인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단기처방을 빨리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재경원 관계자〓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정부로선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다만 한은 등의 반발로 법안무산에 따른 코스트가 너무 크다는게 문제다. 대외신인도 하락에 따른 특단의 대책이 별도로 나와야 한다. ▼한국은행 자금부 관계자〓작년 5월에 단자회사에서 전환한 후발 종금사들은 만기 1년이내의 외화를 마구 빌려 태국 등에 투자했다가 물린 돈이 엄청나다. 모두 재경원이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연말까지 갚아야할 외화가 60억달러를 넘는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개발연구원(KDI)신인석(辛仁錫)연구위원〓금융산업이 자체적으로 부실화를 해결하기 어려워 정부의 재정지원은 불가피하다. 재정으로 은행증자에 참여하든가,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금융기관 인수합병문제는 개혁법안 중 통합예금보험공사가 할 수 있으므로 예금보험공사 설립을 위해 11개법안만의 선별처리도 차선책으로 고려해야 한다. ▼금개위 이덕훈(李德勳)행정실장〓국가경제 전체를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변신할 능력이 없는게 확인됐다. 위기를 뚫고 나가려면 물가안정은 일단 제쳐두고 돈을 더 풀어야 한다. 먼저 중앙은행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을 상대로 협조요청을 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IMF에 요청해야 한다. 이 경우 나라의 위신이 말이 아니고 한국경제의 공신력을 회복해 경쟁력을 갖추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장〓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된다 해서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이 단숨에 바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망은 엄청나다. 정부를 믿고 부채상환 요구를 미루거나 주식 매도를 자제한 외국인들이 당장 움직일 기세다. 이 경우 연말까지 갚아야 한다는 2백억∼3백억달러가 문제가 아니다. 1천4백억달러가 넘는 외화부채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정부는 국가차원의 단기부채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IMF 구제금융보다는 정부 대 정부, 중앙은행 대 중앙은행 차원에서 미국 일본 등에 구조요청신호(SOS)를 보내야 한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李漢久)소장〓대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끝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다. 정부가 강력한 안정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외화부도를 피할 길이 없다. 정치권을 배제하고 대통령 긴급조치를 내려 이번 법안에 상응하는 조치를 써야 한다. 종금사 등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 재벌그룹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참여할 길을 열어야 한다. ▼HG아시아증권 서울지점 남기영(南基濚)지점장〓금융개혁입법 무산으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체감(體感)신용이 더 낮아질 것이다. 자연히 외국 금융기관들이 부채연장을 기피한다. 아직 한국시장에 기대하고 있는 외국인 주식투자자들도 등을 돌리면 외환위기는 걷잡을 수 없다. 새 정부가 금융개혁을 하기에는 너무 늦다. 급한대로 종금사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장기 무기명채권 발행허용 등 재계의 요구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안될 시점이다. 〈윤희상·임규진·정경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