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왜 욕인가. 욕 나오는 세상이라서? 사는 게 그리도 욕돼서? 이유야 어쨌든, 왈칵 느닷없이 불끈 솟구치는 게 욕이다. 그도 아니면 슬며시, 또는 저절로 삐져 나오든지. 아차, 싶었을 땐 이미 엎질러진 물. 욕은 폭발한다. 터지고 박살나는 그 무엇이다. 예사말로 다스리지 못하는 어긋남이고 벗어남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불을 뿜는 「막가는 말」이다. 문란(紊亂)한 기운이고 반란(反亂)의 징후다. 파괴고 폭행이고 예외고 소외고 일탈이다. 욕은 지금껏 「음지의 말, 그늘의 말」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백정이나 갖바치쯤으로 천대받아 왔다. 개밥의 도토리,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제길, 개떡 같은 욕팔자」. 그러나 그런 욕에도 마침내,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쥐구멍 아니, 욕구멍에도 볕들 날이 찾아온 것. 악담(惡談)으로 덕담(德談)을 지향하는 「욕설의 역설」을 인문학의 지평 위로 띄워 올린 책이 선을 보였다. 「욕―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사계절 펴냄).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김열규교수(인제대)가 욕의 그 불가피한 충동성, 그 놀라운 언어적 전략을 예의 걸쭉한 입담으로 풀었다. 국문학 민속학을 공부해온 전문성과 안목까지 곁들여. 「뭔가 다급하고, 핍박하고 윽박지르고 싶은 게 있을 때 터져나오는 게 욕이다. 그것은 본능만큼이나 억누르기 힘든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산이다. 다만 피에서 태어나지 않고 문화에서 타고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저자는 그러나, 욕은 터뜨리면서 「삭이는」 것이라고 한다. 감정의 발산이면서 동시에 감정의 달램이고 위안이라고 한다. 저자는 불가능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면서 현실 자체를 더한층 적나라하게, 족집게처럼 「잡아채는」 욕의 화법에 혀를 내두른다. 언뜻 보기에 기상천외하고 영 다른 것들의 어울림. 그런데도 꼭 들어맞고 아귀가 꼭 맞는다. 「새 뒤집어 나가는 소리!」. 「얼빠지긴, 두룽박 쓴 야시(여우) 아닌가?」. 욕은 아무리 원수끼리라도 어울리게 하는 비유법을 호시탐탐 노린다. 비유법에 관한한 속담이나 시보다 한 수 위다. 「족제비 초상에 간 생쥐 같이 웃기는…」. 욕은 허풍쟁이이기도 하다. 허풍 치고 배짱 두둑하기로는 당할 재간이 없다. 「지 아비 메치고 힘 자랑할 놈!」. 「접시 물에 빠져 죽을 놈!」. 욕은 태생부터가 무섭고 못생기고 비뚤어졌다. 그 생김새가 영락없이 「벅수」(장승)의 상판때기다. 뭔가 한 바가지 욕을 안기는 듯한, 그러면서도 멍청할 정도로 따스하게 안는 듯한 장승의 얼굴. 곯을대로 곯고 익을대로 익은 욕의 속내가 그대로 비친다. 욕의 탄생과 그 변주(變奏)를 더듬고 살피는 사이사이에, 저자는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욕의 문화사랄까, 사회사를 짚는다. 예컨대, 욕도 성차별을 한다. 「찢어진 년」이라니. 「여성은, 그것도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은 원천적으로 찢어진 존재, 금간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찢은 가해자들이 찢김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적반하장으로 뒤집어씌운 한맺힌 욕이다」. 「이럴 땐 이런 욕이 백발백중」이란 부록을 곁들였다. 필요할 때, 제대로 골라서 경우에 들어맞게, 그러나 상대방 간을 도려내는 기세로 내지를 만한 욕들을 모았다. 욕먹어 싼 치들, 속이 뜨끔해지고 욕귀신의 콧대가 우뚝 솟는 욕. 속내 문드러졌을 상대방에겐 따끔한 침이고, 입성 거친 욕쟁이에겐 해장국 한 그릇에 값하는 욕이랄까. 삼갈수록, 뜻이 깊을수록 좋기로는 예사말이나 욕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게 저자의 지론. 「세상 세수시키듯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 그게 욕의 금과옥조(金科玉條)다. 그래서 벼락치듯 내리치는 욕을 최고의 품계로 친다. 「벼락은 지기(地氣)를 돋워 보리 이랑에 싱그러운 푸름을 더해준다. 그런 욕이라면 벼락치듯 하면 할수록 좋다. 다들 바로 되자고 하는 욕, 세상 제대로 돌아가자고 다그치는 욕이 아쉬운 요즘이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