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혈액형 검사를 받은 아이에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검사결과 자신의 혈액형은 B형. 그런데 아빠는 A형이요 엄마는 AB형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럴 수가. 어떻게 한 가족의 혈액형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 것은 자신이 아빠와도 엄마와도 다른 혈액형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느 한쪽만 닮았더라도 좀 위안이 될텐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신생아실에서 뒤바뀐 채 몇년을 자라다 혈액형 검사 결과 친자가 아니라고 밝혀져 문제가 된 아이들 이야기가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다. 아이는 그 뉴스를 보며 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혹시 나도 바뀐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말이다. 그 의혹을 풀어주느라 나는 안해도 될 고생을 했다. 중학생에게도 어려울 혈액형의 유전공식을 설명해주었다. 물론 아이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지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함으로써 아이에게 신뢰감을 주려 했을 뿐이다. 나아가 육아수첩이며 육아일기를 꺼내놓고 아이를 낳던 날의 이야기를 소상히 해주었다. 그런 노력으로 아이는 자신이 뒤바뀐 것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엉뚱한 소리를 한다. 아빠와 자신은 혈액형상 아무런 공통점이 없으므로 음식을 나누어먹거나 뽀뽀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아빠가 뽀뽀를 하면 얼른 닦아내곤 해 딸이라면 「깜빡」 죽는 아빠를 섭섭하게 하곤 한다. 불행중 다행으로 나는 남편과 아이쪽에 양다리를 걸쳤으므로 별 문제가 없다고 면죄부를 받았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그런 엉터리 상식을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고 누누이 설명해도 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어린 아이의 고집만큼 까닭없이 완고한 게 또 있을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른들도 종류만 다르달 뿐 우습기는 마찬가지인 이런 편견을 지니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역적 편견, 직업적 편견, 학벌이나 출신학교에 따른 편견 등등. 우리 아이야 자라면서 자신의 편견을 버릴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굳은 어른들의 고집스런 편견은 쉬 바뀌지 않을 것이니 참 문제가 아닌가. 신양란(경기 파주시 법원읍 가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