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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30)

입력 | 1997-10-20 07:47:00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56〉 『오, 제발 저를 이 나라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파티마는 마루프의 손에 입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과거를 뉘우치며 다시는 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마루프는 그 불쌍한 자신의 전처를 위하여 궁전 하나를 내어주고 노예계집이며 내시들을 시켜 시중을 들게 하였으니, 「똥구멍」 파티마는 마침내 왕비가 되었던 것이다. 파티마가 왕비가 되자 누구보다도 멸시를 받았던 것은 두냐 공주가 낳은 왕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왕비가 된 파티마의 눈에는 이 왕자야말로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그런 멸시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무럭무럭 자랐다. 한편 마루프로 말할 것 같으면, 동정심 때문에 파티마를 왕비로 책봉하기는 했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티마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추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털은 허옇게 세고 대머리까지 벗겨져 그녀는 얼룩뱀보다 더 징그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루프가 그녀에게 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다만 그녀의 그 추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악착스럽게도 자신을 괴롭혔던 그녀에 대한 기억이 도저히 그녀에게 정을 느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옛 속담에도 「학대는 욕정의 뿌리를 끊고, 마음의 흙에다 증오의 씨를 뿌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마루프가 파티마를 아내로 인정하여 왕비로 책봉한 것은 그녀에게 무슨 신통한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전능하신 알라의 율법을 받들어야 한다는 그의 너그러운 마음에서였을 뿐이다. 마루프의 가슴에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그 착하고 사랑스런 두냐 공주 뿐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독자들이여! 부부간의 사랑이란 뿌린대로 거두는 것.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사랑을 거둘 것이요, 미움의 씨앗을 뿌리면 미움을 거둬들일 것이다. 그래서 옛 시인들도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남편을 해치고 미움을 사지마라. 한번 미움이 생기면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사랑하는 마음 사라져버리면 마음은 유리 그릇과 같이 한번 깨어지고나면 영원히 본래 모양을 찾을 수 없으리. 오, 한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남편의 사랑을 잃어버린 아내는 비에 젖은 소가죽과 같아서, 그 속에 바글거리는 것은 오직 질투라는 구데기들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파티마는 남편이 자신의 침소에는 들지 않고, 다른 측실들에게만 정을 쏟는 꼴을 보자 질투심으로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흥, 제까짓게 언제부터 왕이라고? 어디 두고 봐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있지』 그녀는 다시 남편에게 화를 입힐 궁리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편의 애정을 잃어버린 아내란 본래가, 남편을 괴롭히는 것으로 나날의 삶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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