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박상영씨(35·여해문화공간 대표)의 별명은 「머리 속의 바람」. 「굳어가는 머리에 항상 새바람을 불어넣고 싶어서」 스스로 별명을 정했다는 그는 머리로 향하는 남들의 시선을 피하려 하느니 아예 머리 얘기를 먼저 꺼내 선수치는 방법을 택했다. 『내 앞에서 빗질하지 마. 빗 다 부러뜨려 놓을 거야』 『왕년엔 나도 사자머리 같았는데 산성비를 많이 맞아서…』 첫만남에서 이렇게 털어놓으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긴장된 분위기가 자연스레 풀어진다. 이러니 따로 머리를 화제삼아 놀리는 사람도 없을 수밖에. 어차피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최선. 대머리라고 속만 끓고 있을 게 아니라 아예 드러내 놓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가까이 대머리를 빗댄 갖가지 놀림에 익숙해진 황인홍교수(39·한림대 가정의학과). 놀리는 말에도 몇 가지 패턴이 정해져 있는지라 이젠 당황할 리도 없고 그때그때 순발력있게 받아 넘긴다. 『괜히 얼굴 굳히고 분위기 딱딱하게 만들어서 이로울 것 없잖아요. 나를 난처하게 만드려는 게 아니라 친밀감의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지요』 대머리가 아닌데도 머리를 아예 빡빡 밀어버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 때문일까. 춤꾼 전인정씨(25·여). 1년전 허리까지 찰랑찰랑하던 고운 머릿결을 「머리에 대한 집착이 싫다」는 이유로 단번에 잘랐다. 「튀어보려고」 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였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춤 파트너인 박나훈씨(25)도 비슷한 시기에 빡빡 밀어 두 사람의 모습이 어지간히 눈에 띄기도 하지만.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고 말리지 않아도 되고 춤출 때 긴 머리채가 신경쓰이지도 않고….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삭발한 머리에 어울리는 독특한 모자를 몇 개 사서 자주 쓰고 다닌다. 가수나 모델 중에서는 「삭발 이미지」로 대중에게 확실하게 기억되는 사람도 여럿. 패션모델 이기린과 김선영은 3년전 파격적인 삭발로 시선을 모아 널리 알려졌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각오로」 머리를 밀었다는 댄스듀엣 「클론」의 멤버 구준엽도 비록 TV에는 모자를 쓰거나 두건을 두르고 나올지언정 삭발을 고수할 생각. 외국에도 배우 율 브리너가 「대머리 패션」을 트레이드 마크로 한 시대를 장식했으며 요즘에는 아일랜드 여가수 시너드 오코너가 대머리에 「준하는」 헤어스타일로 세계정상에 서 있다.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촬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삭발하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화제가 되곤 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얼마전 모 건전지 CF를 제작할 때는 삭발을 불사한 어린이 모델들이 몰려들어 결국 50명의 어린이 삭발모델이 등장한 CF가 탄생하기도 했다. 〈윤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