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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이훈/예비엄마의 때늦은 눈물

입력 | 1997-09-17 20:15:00


17일 오전 11시경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살해 사건 현장검증이 열린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이모씨집 지하 극단사무실. 유괴범 전현주(全賢珠·28)씨가 수사관들에 이끌려 오전 9시반 나리를 처음 만났던 서초구 잠원동 킴스클럽 앞에서부터 속셈학원, 처음 협박전화를 걸었던 공중전화 부스를 거쳐 살해 장소인 극단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 주변엔 추석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던 3백여명의 시민이 몰려나와 수사관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축 늘어진 전씨를 차가운 눈초리로 응시했다. 13평 남짓한 어두컴컴한 지하실 계단. 누군가 가져다 놓은 흰 국화 한다발이 놓인 계단을 수사관에 이끌려 비틀비틀 내려서던 전씨는 아직 가시지 않은 악취에 자신의 범행 순간이 떠오른 듯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나리의 손발을 묶고 코와 입에 청테이프를 붙인 뒤 목졸라 살해하는 장면. 흰 꽃 두 송이가 수놓여진 연녹색 원피스에 오른손에는 백설공주가 그려진 분홍색 가방을 든 파란 눈의 인형이 지하실 바닥에 눕혀졌다. 흐느끼던 전씨의 울음은 통곡으로 바뀌었고 전씨는 범행 재연을 요구하는 수사관들의 팔을 거세게 뿌리치며 울부짖다가 정신을 잃었다. 결국 살해장면 검증은 전씨가 인형의 목을 조르는 대신 팔을 잡는 정도로 끝났고 전씨는 협박전화를 추가로 걸었던 명동의 카페를 마지막으로 3시간반의 현장검증을 마쳤다.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것만 보고 들어야 한다는 만삭의 임신부.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실신까지 한 임신 8개월의 전씨가 애처롭게 느껴질 만도 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 『어떻게 아기를 가진 엄마가 그런 짐승같은 짓을 할 수 있는지 천벌을 받아야 해』 수사관의 등에 업혀 지하실을 나가던 전씨의 등 뒤로 어느 아주머니의 분노한 음성이 쇳소리처럼 울려퍼졌다.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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