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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한상일/8·15에 생각하는 韓日관계

입력 | 1997-08-14 20:25:00


오늘은 52년 전 한민족이 36년이라는 긴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해방된 날이자,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8.15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 뜻깊은 날이다. ▼ 우려되는 日 역사인식 ▼ 한일 두 나라에 있어 8.15가 함축하는 오늘의 의미는 「해방」과 「패망」을 뛰어넘어 참다운 동반적 선린의 관계를 구축하라는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날의 역사를 겸허하게 뒤돌아볼 수 있는 자세와 진실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역사적 진실을 어느 한편의 그릇된 자존심 속에 묻어두거나, 또는 굴절시킨다면 두 나라의 바람직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일 두 나라의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像)는 가해자―피해자라는 불행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형성됐다. 이 이미지는 화석화(化石化)된 감정으로서 좀처럼 순화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피해자였던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전후(戰後)반세기의 한일관계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현해탄의 격랑을 몰고 왔던계기는 모두 이화석화된 감정의 부닥침이었던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일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이런 거부감은 단순히 과거 식민통치의 아픔에서 연유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이후 끊임없이 반복돼온 일본 지배계층의 식민지시대에 대한 사죄와 찬양이라는 이중적 태도가 일본인의 진심을 의심케 하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왔다. 한국인의 가슴에 맺힌 반일정서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빨리 순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지난날의 역사를 일본이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 그리고 지난날의 역사적 진실을 일본이 한국과 공유할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정계 학계 매스컴에서 의식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새로운 역사인식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 교수 평론가 등 광범위한 지도계층이 참여한 「밝은 일본 국회의원회」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회」 등은 한일합병은 합법적이었고 식민지통치는 한국에 유익했으며 침략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자라는 세대에 교육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일본사회에는 보편적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작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의 진실이 밝혀진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 반성없인 선린 없어 ▼ 어그러나 일본사회의 과거사 재해석 움직임에 강한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것은 지난날 일본이 국내외적 격동기에 항상 주변국가의 희생과 굴종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역적으로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시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았고, 아시아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공헌하지도 않았다. 전전(戰前)에는 아시아를 침략과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고, 전후(戰後)에는 원료공급원이나 시장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21세기에는 일본이 아시아 공동의 번영과 평화에 공헌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일본상을 구축, 그 틀 속에서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길을 선택하기 바란다. 식민지시대에 한국의 미래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경고는 오늘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야나기는 『일본이 도덕적 거짓을 씻어 버리지 않는 한 일본과 한국 문제의 곤란함은 영원히 지속되고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고 1923년에 경고했었다. 한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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