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52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낮 12시 50분경.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6년째 계속된 수요시위가 끝날 무렵이었다. 대사관에서 15m쯤 떨어진 도로 위에서 갑자기 두 여인이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 지난 4일 일시 귀국했다가 시위에 참가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훈」할머니(본명 랭 훈)와 일본 나고야(名古屋)지역에서 활동하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11일 남편 및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서울에 온 안자이 레이코(安西玲子·36)였다. 행사장을 떠나 식당으로 가던 훈할머니에게 안자이가 다가왔다. 시위에 참석했던 누군가가 『훈할머니에게 사죄하러 온 일본인』이라고 소개하자 안자이는 연방 머리를 숙여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은 5분여동안 끌어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훈할머니의 휠체어를 붙잡고 있던 손녀딸 등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도 눈시울을 붉혔다.훈할머니와 안자이는 캄보디아어 한국어 일본어의 이중통역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하며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듯 했다. 안자이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세대를 뛰어넘는 「화해」였다. 울음을 멈춘 훈할머니는 『일본인에 대한 미움과 괴로움은 죽는 날까지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며 『큰딸이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다가 딸은 이미 죽고 나도 죽을 때가 다 돼서야 일본인의 사죄를 받으니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안자이는 『3년 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TV 방송을 봤을 때 숨이 막힐 정도의 충격을 받은 뒤 위안부를 돕는 일을 해왔다』며 『수요시위에 참석하기 전에 훈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민간 차원에서 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시아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의 잘못된 점을 홍보하는 등 「구일본군에 의한 피해여성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활동해 왔다는 것. 지난 92년 1월8일부터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정대협 등 관련단체회원과 학생들이 계속해 온 수요시위는 이날로 2백77회를 맞았다. 〈이나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