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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인길/제조업만으론 안된다

입력 | 1997-07-08 20:11:00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교수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강대국의 흥망」을 쓴 지난 87년 미국경제는 참으로 암울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간판기업 간판업종들이 줄줄이 세계 시장에서 무참하게 밀려나면서 3류채무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패배주의가 팽배했다. 케네디교수도 미국이 역사상의 다른 제국들처럼 경제력과 군사력 쇠퇴로 머지않아 세계적인 지배력을 상실하고 몰락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美경제 부활의 비결 ▼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상황은 1백80도 반전됐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퇴색했던 기술왕국의 패권이 부활하면서 미국은 70, 80년대의 부진을 말끔히 털어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기준으로 5.8%를 기록한 지난 1.4분기(1∼3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런 상승무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경제를 우습게 봤던 일본의 코가 납작해졌다.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팍스 자포니카」로 넘어온다고 흥분하던 분위기도 어느새 사라졌다. 불과 몇년사이 美日(미일)역전의 배경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 경제의 1.4분기 성장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놀라운 것은 성장률 5.8%의 절반이 정보통신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 생산으로 이뤄졌다는점이다.통계적으로따져 반이지 엄격히 말하면 그 보다 훨씬 높다. 컴퓨터를 보자. 통상 기계제품으로 분류하지만 기계적인 것과 소프트웨어 부분을 구분하기가 모호하다. 지난 80년엔 컴퓨터가격의 80%가 일본이 강한 하드웨어이고 나머지 20%가 소프트웨어였던 것이 지금은 그 반대다. 미국이 장악한 소프트웨어가 80%이상을 차지한다. 공산품인가, 정보 서비스제품인가. 같은 제품이라도 옛날과는 의미가 판이하다. 광케이블도 그렇다. 과거 전화선 1t의 통신능력이 지금은 70파운드짜리 광케이블 하나면 해결된다. 에너지도 동선(銅線) 1t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의 5%밖에 들지 않는다. 투입재료와 소비에너지의 감소, 미국경제가 인플레 없는 고성장을 하고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 통신이 선도하는 미국경제의 부활은 물적 자원이 빈약한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기회가 무엇인지를 여러모로 시사한다. 한마디로 자동차와 철강 조선처럼 중후장대한 몇개 제조업에 편협된 우리나라의 산업구성으로는 세계시장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조업이 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부가 탈제조업 전략은 미국경제의 새로운 시사점이다. 로봇으로 말하면 인텔리전트성이 높은 로봇, 공작기계는 수치제어, TV같으면 영상혁명에 대응하는 하이비전, 같은 PC라도 대화기능이 뛰어난 타입으로 가야 독창적인 승부가 있다는 얘기다. 공장 굴뚝적인 하드웨어에 집착하면 이삭줍기밖에 안된다. ▼ 정보통신 내실 다져야 ▼ 이 점에선 정보화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마다 통신망을 깔고 수평형 커뮤니케이션을 요란하게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속빈 강정격이다. 비싼 돈을 들여 사내 네트워크(LAN)를 설치하면 뭣하나. 10% 기능도 활용하지 못하고 썩히는 게 현실인데…. LAN의 기능을 제대로 살리고 쌍방향 그룹웨어로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기껏해야 본사 경영진의 지시나 의견을 컴퓨터와 통신회선으로 생산 사무현장에 전달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자본과 정보가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무국경성의 시대에 형식만 요란한 기업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자명하다. 이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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