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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33)

입력 | 1997-07-08 07:55:00


제8화 신바드의 모험 〈86〉 그날 아침 왕은 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형제여, 정녕 그대는 나를 구원해주었도다. 알라께 맹세코, 나는 그대를 섭섭하게 대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대는 이 나라에서 최고의 국빈 대접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대저택은 물론이고 최고의 봉록을 내릴테니 내 곁에서 떠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기 바란다』 왕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도 고맙지도 않았습니다. 사랑스런 공주에 대한 연모의 정은 내 마음에 깊은 병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몹시도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외람된 말씀이오나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사옵니다. 국빈 대접도, 대저택도, 봉록도, 아무것도 저를 위하여 베푸시지 않는 것만이 저를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은혜를 베푼 자를 섭섭하게 대하는 자 다시는 은혜를 입지 못하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오, 임금님이시여, 알라께 맹세코, 저는 아무것도 임금님께 은혜를 베푼 것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어젯밤 일을 두고 제가 임금님께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젯밤 일은 다만 저의 운명이었을 뿐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왕은 감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오! 알라께 맹세코, 그대는 정녕 성자로다! 나에게 베푼 그 크나큰 은혜를 두고 그대는 단지 그대의 운명이라고 하다니? 이는 정녕 성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이로다. 그렇지만 형제여, 비록 내가 그대에게 보답하려고 하는 것이 하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초라한 왕을 위하여 거절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왕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급기야 눈물로써 애원하며 말했습니다. 『오, 현세의 임금님이시여, 임금님께서 진실로 저를 아끼신다면 어젯밤 일을 두고 저에게 아무것도 베풀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오늘로 임금님의 궁전을 떠나 길거리로 나가겠습니다. 길거리로 나가 걸인이 된다 할지언정 저를 붙잡지 마실 것은 물론이려니와, 저에게 어떤 적선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만약 어젯밤 일 때문에 임금님한테서 한푼의 동전이라도 받게 된다면, 훗날 제가 알라의 부름을 받고 갔을 때 그분께서는 끝내 저를 외면하실 것입니다. 이 점 깊이 양해하시고 이제 제가 임금님의 궁전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주시옵소서』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왕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손에 입맞추며 말했습니다. 『오, 성자여! 내 어찌 그대의 높으신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그대 앞에 무릎을 꿇어 앙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눈먼 왕을 인도하여 주십사 하는 것뿐이로다』 이렇게 말한 왕은 급기야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그러한 그를 다급하게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오! 제발! 당신은 이 나라의 임금님이십니다. 저같이 하찮은 나그네 앞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됩니다. 게다가 임금님께서는 제가 하룻밤을 함께 한 공주님의 아버님이시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