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책을 사주는 것은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일 것이다. 나는 결혼 전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책가게에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었다. 책을 사달라는 아이의 말에 기쁘게 따라나선다. 책가게는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것이 좋다. 그보다 가까우면 너무 밋밋하고 멀면 차를 타고 싶어질 것이다. 차를 타고 가는 책가게는 어쩐지 맛이 나지 않을 것같다. 가는 동안 아이가 보고 싶어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려면 제법 큰 가로수들이 차도를 막아주어야 분위기가 산다. 화단을 끼고 있는 잔디밭이라면 더욱 좋다. 책가게에 들어서면 아이는 보고 싶은 동화책을 또는 위인전을 고른다. 하다못해 참고서라도 좋다. 그 동안 나는 나대로 필요한 책을 뒤적인다. 그리고 아이와 내가 산 책을 포장하여 값을 치르고 아이에게 책을 들려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큰 일이라도 해낸 양 흡족해 할 것이다. 이런 꿈이 꼭 그대로는 아니어도 가끔 실현된다. 책가게는 우리 집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말 몇마디를 나눌 여유는 된다. 그리고 꿈처럼 여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최소한 그 살벌한 횡단보도를 건너지는 않는다. 그런 정도여서 그런지 그 길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 것같다. 그래도 아이의 학교생활, 친구 이야기 정도를 들을 수 있으니 그런대로 좋은 길이다. 책가게도 학습 참고서가 3분의 1쯤을 차지하는, 그래서 차가운 모습이다. 뭐, 그래도 괜찮다. 규모에 비해서 책도 많고 무엇보다 주인 아저씨가 내 꿈속의 그 아저씨와 비슷하다. 정작 차이가 있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아이가 만화책을 고른다. 「아이구, 이게 아닌데」. 그러면서도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만화책을 사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도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어릴 적에 만화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고 집으로 한 아름씩 빌려오기도 했다. 그것이 연장되어 나이가 든 후에도 「캔디」나 「공포의 외인구단」까지는 보았다. 나는 분명히 첫 번째 만화세대에 속한다. 그런 내가 아이가 만화를 좋아한다고 기겁을 할 이유가 없다. 요즘은 컴퓨터라면 멀티미디어로 통한다. 컴퓨터 세대가 아닌 우리는 이런 말이 나오면 그만 기가 죽는다. 「저런 것을 배울 수 없었던 우리는 불행한 세대야」하는 탄식이 나오기도 하겠지만 잠깐만 뒤돌아보자. 만화는 문자에 그림을 더한 매체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최초의 멀티미디어 세대다. 황인홍(한림대 교수·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