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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부터 6일째 도심 곳곳에서 과격폭력시위를 주도해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끝내 출범 5년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지난 2일 시위진압중이던 柳志雄(유지웅)상경이 숨진데 이어 4일 20대 근로자 李石(이석·23)씨가 학생들에게 맞아 숨지는 「한총련 학생들에 의한 고문치사사건」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5월 출범한 한총련은 민족민주계열(NL)이 줄곧 주도권을 잡아 통일운동과 민족자주운동 등을 중심과제로 삼아왔다. 한총련 의장과 각 지역총련 의장 등 주요 간부직은 모두 NL계 일색으로 선출돼 민중민주계열(PD) 등 다른 계열은 조직구성에서부터 철저히 배제됐다. 이들은 출범 초기부터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등 급진적인 주장을 펼쳐 대중운동보다는 자기과시적인 투쟁을 벌여 일반 학생들에게 외면당해왔다. 한총련은 출범초기 한때 비폭력투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강경파들이 득세하며 점차 폭력투쟁쪽으로 선회했다. 특히 한총련 의장을 남총련 소속인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맡은 이후에는 과격폭력시위가 극을 향해 치닫게 됐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한총련은 지난해 연세대 사태 이후 지도부가 대거 검거되고 일반학생들로부터도 외면당하다 비난까지 받게되자 한동안 폭력시위를 자제하는 듯했다. 지난해 말 치러진 각 대학 학생회장선거에서 NL계열은 전국 1백55개대 중 74개대를 차지, 여전히 우위를 지켰으나 PD계열 등에 밀려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데는 실패했다. 또 NL계 내부에서도 연세대사태에 대한 평가과정에 온건파와 강경파가 서로 비난하는 등 내분조짐까지 드러냈으나 올들어 개정노동관계법 무효화 투쟁과정에서 강경파가 다시 힘을 얻음으로써 의장 등 요직을 강경파가 모두 장악하게 됐다. 그러나 올들어 NL계열을 누르고 비운동권 출신이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연세대와 PD계열 등이 학생회를 장악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한총련 탈퇴 움직임이 일어났고 39개대가 한총련에서 탈퇴하거나 회비납부를 거부했다. 지난해 연세대사태 이후 국민의 비난여론이 만만찮은 터에 대학사회에서도 궁지에 몰리자 초조해진 한총련 지도부는 결국 이번 5기 출범식을 새로운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으려고 하는 바람에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총련은 한양대에서의 출범식 강행을 목표로 가두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폭력시위를 서슴지 않았고 시민의 발인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남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열차까지 강제로 정지시키는 등 분별없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아 비난을 샀다. 그러나 한총련은 유상경 사망사건에 이어 「이석씨 고문치사사건」까지 발생함으로써 출범식을 치를 수 있을 것인지조차 불투명한 상태에 놓이는 등 회복불능의 위기에 몰린 것. 전대협 간부를 지낸 최모씨(33)는 『80년대와 90년대의 사회가 다르다는 것을 한총련이 알아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로 한총련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만큼 한총련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현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