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은 지난 92년 5월8일 제1기 출범식행사때 태극기와 북한인공기를 나란히 들고 나오면서부터 「각별한」 주목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일은 남총련의 전신(前身) 「남대협」시절인 지난 90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장을 배출하는 등 조직력 측면에서 수준에 오른 남총련이 명실상부한 민족해방(NL)계 전위로 자리를 굳히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남총련은 지난 93년3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5.18묘역 참배를 저지한데 이어 같은해 11월 광주아메리칸센터 경비경찰을 새벽에 화염병으로 기습하는 등 전반적인 학생운동 침체국면에서도 투쟁성을 독보적으로 과시해 왔다. 남총련이 그들의 존재를 더욱 알린 사건은 94년7월 전남대 金日成(김일성)분향소 사건. 김일성 사망직후 전남대 학생회관 2층에 김일성의 영정과 향로 등을 갖춘 반듯한 분향소를 차려 놓았다가 경찰의 압수수색에 적발됐다. 공안 관계자들은 이때 남총련측이 『경찰이 학생운동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분향소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등 치밀한 전술적 역공을 취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경찰의 비디오 채증과 검거된 다수 주모자들의 진술로 분향소 설치는 물론 집단분향 사실까지 확인됐지만 남총련은 「당국과 언론의 합작품」으로 몰아세웠다. 이번 상경 때도 사용했던 열차강제정차 행동도 지난 90년 전남대 제4기 「전대협」출범식 때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기 위해 학교앞 철교에서 열차브레이크를 당겨 새마을호를 정차시키면서부터 이어져 온 그들만의 전통이다. 광주지검의 한 관계자는 『오월대 녹두대 등 대학별 전투조직을 통한 사상적 편향과 투쟁일변도의 조직활동 등은 남총련에 있어 이미 생소한 얘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광주〓김 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