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과장인 이재현씨(36)는 요즘 종종 풀이 죽는다. 지난해 가을 회사에 명퇴바람이 불고난 이후부터인 듯하다. 형님처럼 모신 이사가 회사를 떠났고 새로 온 이사는 늘 호통이다. 자신이 잘못한 일의 책임을 떠넘길 땐 분통이 터진다. 그는 울적하거나 힘들 때마다 지갑을 꺼낸다. 7년 동안의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와 울보인 네살배기 딸, 지난해 가을에 태어난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다. 아내가 올 봄 비닐로 코팅해 준 것이다. 이씨는 아내가 난데 없이 가족사진을 줄 때 『원 참 싱겁기는…』하며 받아 지갑에 꽂아 두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어깨가 처진 남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픈 아내들이여, 오늘은 가족 사진을 찾아서 남편의 지갑 속에 살짝 끼워주자.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