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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청문회]정재철씨 『權의원과 함께 鄭씨 만난적없다』

입력 | 1997-04-15 20:00:00


15일 한보청문회 증인대에 선 신한국당 鄭在哲(정재철)의원에게는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에게 건네준 돈의 성격 △95년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의 돈을 권의원에게 전달하지 않은 이유 △그밖에 대출청탁 등에 개입한 일이 있는지 여부 등의 질문이 집중됐다. ▼ 권의원이 받은 돈의 성격 ▼ 정의원은 『지난해 10월 정총회장으로부터 골프백에 든 1억원을 받아 권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야당의원 4명이 국정감사에서 한보 관련 자료를 요청, 권의원에게 부탁해 이를 무마해 달라는 것이었으며 정총회장이 건네준 의원 4명의 이름이 적힌 쪽지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특히 『하얏트호텔 로비에서 만나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이 하나 왔다」고 했고 권의원은 「형님을 봐서 해드리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의원은 또 권의원을 택한 이유에 대해 『친한 친구이고 상당한 중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의원은 돈을 전달한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10월 초순쯤이지만 날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 30대재벌 여신자료 요구 ▼ 국민회의 金民錫(김민석) 金景梓(김경재)의원 등은 당시 국민회의 소속 「재경위 4인방」이 요구한 자료는 「30대 재벌 여신현황」이라고 소개한 뒤 『이 자료는 누구나 요청하는 자료이기 때문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권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민련 李相晩(이상만)의원은 『이 자료를 요청하면 재경원이 30대 재벌의 여신을 합산한 자료를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런 자료를 야당탄압의 수단으로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의원은 『나는 단순히 정총회장이 급히 만나자고 해서 그런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재경위도 아니고 행정위였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모른다』며 『자료에 대해서도 재판을 통해서 알게 됐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 정의원의 1억원 착복이유 ▼ 정의원은 『95년10월에도 정총회장으로부터 권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1억원을 받았으나 이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권의원에게 몇번 연락했으나 되지 않았다. 또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구가 속초―고성에 인제―양양이 들어오게 돼서 돈이 없어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생각으로 조직관리를 위해 썼다』고 해명했다. 이에 야당의원들은 정의원이 95년 봄에 金時衡(김시형)전산업은행총재를 정총회장에게 소개해준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느냐고 따졌다. 국민회의 李相洙(이상수)의원은 『증인이 꾸며낸 허구가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정의원은 『정총회장과는 친구인데 대가 운운할 처지가 아니다. 대가는 절대 아니다』고 극구 부인했다. 그는 또 다른 청탁에 개입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에는 『나는 그럴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 정총회장 권의원 소개경위 ▼ 지난 93년 3월경 정총회장과 권의원의 첫 만남에 대해 정의원은 『셋이 만난 게 아니고 권의원에게 하얏트호텔로 몇 시에 몇 호실로 가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또 『이후에도 두 사람끼리 만났다』며 「3자회동」은 없었다고 검찰진술을 번복했다. 정의원은 특히 「권의원이 하얏트호텔에서 돈을 받고 나오다 객실직원을 만나 깜짝 놀라 다시 그 돈을 정씨에게 준뒤 나중에 장충동 국립극장 구내에서 받아갔다」는 검찰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정총회장에게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들은 내용』이라고 답변했다. ▼ 정의원의 사죄 ▼ 특위위원들은 『후배의원의 의정활동을 무마하기 위해 돈 심부름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추궁했다. 정의원은 『사실 마음속으로 괴롭고 여러가지를 반성하고 있다. 과거의 관행으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데 대해 국민에게 미안하고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후배들을 볼 낯이 없다』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정의원은 권의원에 대해서도 『마음속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 아프다. 재판에서도 서로 다시 만날 때 이전의 우정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원직을 사퇴할 용의가 없느냐는 질의에는 명백한 답변을 피했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