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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타결]노사 힘겨루기 파란 예고

입력 | 1997-03-09 19:46:00


[새 노동법이후 「춘투」] 『여야가 합의한 노동법재개정안은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고 그런대로 개선된 내용도 담고 있지요. 그럼에도 노동계로선 새 노동법안의 「지배」를 철저히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9일 한국노총의 한 고위간부는 이번 노동법 재개정안을 바라보는 노동계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올 봄 노사관계가 새 노동법의 적용과정에서 어느해보다도 많은 파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임금투쟁보다는 변형근로제 정리해고 등 새 노동법조항에 대한 저항이 크게 부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노동전문가들도 『경제위기 고용불안 등으로 인해 노사관계가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 「새 노동법 적용」이라는 엄청난 불씨가 던져졌다』며 걱정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곧 산하 모든 노조에 지침을 보내 『사업장별 단체협약 체결과정에서 새 노동법의 적용을 거부하라』고 지시할 방침이다. 우선 주당 56시간 한도 변형근로제의 경우 노조와 사전 서면합의가 필요하므로 일선 노조들이 상급단체의 지침에 따라 서면합의를 거부할 경우 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리해고도 새 법은 2년 유예후 「노사협의」를 거쳐 시행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단체협약에 「우리 회사는 노조의 합의없이는 정리해고를 시킬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을 넣을 경우 시행요건이 훨씬 까다로워진다. 2년으로 연장된 임금협약 유효기간도 1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이같은 노동계의 전략은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것이므로 단체협약이 법 기준보다 더 좋은(상회하는) 근로기준을 규정할 경우 단체협약이 우선한다」는 법이론에 바탕한 것이다. 결국 노동계의 지침대로 일선 노조들이 각 사업장에서 새 노동법 무력화투쟁을벌일 경우새 노동법에 따라 변형근로제 등을 시행하려는 사용자측과 격렬한 마찰이 불가피하다. 노동계가 예고하고 있는 5월 총파업도 이같은 임단협 진통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노총은 이달말까지 임금교섭을 벌인 뒤 4월초에 각 산별연맹들이 동시에 쟁의발생신고를 내고 5월1일 「노동절」에 총파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도 비슷한 투쟁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노동전문가들은 만약 노동계가 총파업을 강행한다해도 정치파업 성격이 강했던 지난번 총파업과는 달리 임단협이 결렬된 사업장의 파업 일정을 조정,비슷한 시기에 파업을 집중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각 사업장별 나름의 파업이슈와 「노동법반대 주장」을 혼합시킨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민주노총이 합법화라는 성과를 얻었으므로 총파업까지 벌일 수 있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 민주노총 분위기는 「도저히 새 노동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쪽이다. 새 노동법이 날치기법에 비해 일부 개선됐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전교조합법화 △한국통신 병원노련 등의 공익사업장 지정 제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철회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선 투쟁 이외엔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고 털어놓고 있다. 결국 노동계는 올 「춘투」를 거쳐 대선 과정에서 「차기정부로 하여금 민주적 노동법 재개정을 이루자」고 촉구하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기홍기자〉 [새 노동법 남은 문제] 지난 8일 여야가 우여곡절끝에 노동관계법 재개정단일안을 마련함으로써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10일 국회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새 노동관계법의 시행시기와 정부후속조치 국회통과절차 등 궁금증에 대해 알아본다. ▼시행시기〓지난 1일부터 시행중인 개정 노동관계법은 시행령이 공포되지 않아 사실상 법 공백상태에 있다. 따라서 여야는 새 노동관계법을 가능한 한 빨리 시행토록 할 방침이다. 일선 노동행정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때문에 여야는 새 노동법을 공포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부칙에 이를 명시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으면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 새 노동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본회의 통과후 정부이송→국무회의 의결→대통령서명→관보게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공포를 서두르면 새 노동법은 이달 중순경부터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속조치〓여야는 우선 3당 합의로 근로자지원특별법을 제정할 방침이다. 이같은 계획은 지난 8일 협상실무자들이 작성한 「3당 노동관계법 합의 발표문(초안)」에도 들어 있다. 근로자지원특별법은 당초 정부가 입법을 추진해왔으나 노동관계법 재개정협상이 진행되면서 중단됐다. 그러나 노동관계법 재개정작업이 마무리됨으로써 다시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발표문안에 따르면 특별법에는 △근로자의 주거비와 학자금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각종 지원책 △근로자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돕기 위한 중소기업 밀집지역의 문화체육시설 확충방안 △장기근속 근로자의 생활향상을 위한 특별조치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노동부가 당초 특별법에 담으려고 했던 체불임금기금조성은 재정경제원의 반대가 심해 실현여부가 불투명하다. 여야는 또 중앙노동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킨다는 합의에 따라 정부조직법의 손질을 정부에 촉구할 예정이다. ▼처리방법〓당초 야당은 『개정 노동관계법의 처리절차 자체가 불법』이라며 무효화를 선언하고 새 노동관계법을 「원점에서 다시 처리하자」는 입장이었다. 신한국당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법을 어떻게 무효화하느냐. 정치적으로 무효화를 선언해도 법률적으로 실익이 없다』며 반대했다. 결국 여야는 총무접촉을 통해 개정 노동관계법 폐지안과 새 노동관계법의 제정안을 동시에 상정, 처리키로 하는 「묘수」를 찾아냈다. 즉 야당은 「제정안」에 무게를 둠으로써 개정 노동관계법을 무효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게 됐고 여당은 「폐지안」에 중점을 둬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날치기한 노동관계법의 적법성은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같은 타협방안은 청와대영수회담이 열린지난 1월부터 신한국당이 내부적으로 준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신한국당 일부의원 중에서 『폐지안과 제정안을 동시에 내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으며 국회를 우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새 노동관계법의 부칙에 개정 노동관계법을 폐지하도록 명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절충의 여지는 남아 있다. 신한국당은 10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이에 대해 의견을 조정할 예정이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