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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여자의 사랑(4)

입력 | 1997-01-04 20:06:00


첫사랑〈4〉 물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여자 아이의 얼굴도 붉어지곤 했지요. 참,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열여덟 살 때 가끔 그런 생각으로 붉어지곤 했던 얼굴 그대로 말입니다. 사랑을 책에서만 배워온 열여덟 살의, 아직도 가슴이 작은 여자 아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비극적이면서도 정열적이고도 격정적인 사랑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요? 제 얘기를 듣는 동안이라도 좋고, 아니면 다른 일로 혼자서라도 말입니다. 열여덟 살 때 참으로 묘한 버릇 하나가 생겼습니다. 지하철에서든 버스 안에서든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어떤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자 아이는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저 사람은 지금 비극적이면서도 정열적이고도 격정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어젯밤에도 그런 정열적이고도 격정적인 사랑을 했던 것인지 몰라.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얼굴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기 전 여자 아이가 늘 먼저 혼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리곤 했습니다. 여자 아이는 자신이 읽은 작품속에서보다 그 아저씨가 기사 속에 「비극적이면서도 정열적이고도 격정적인 사랑」이라고 쓴 문장을 더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누구나 즐겨쓰는 단어가 있는데, 아저씨는 작품 속의 이야기에 대해서건 아니면 작가의 생애에 대해서건 「비극적」이라는 말과 「정열적」이라는 말을 자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자 아이는 아저씨의 기사를 읽고 난 다음 때로 혼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 아저씨는 지금 비극적이기에 더 정열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 운명 때문이든 아니면 돈 때문이라거나 병 때문이든 서로 사랑하다 헤어지는 모든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생각하고, 가슴과 가슴이 닿는 모든 포옹을 정열적이고도 격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아보면,그것은 아직 가슴이 작은 여자 아이의 한계가 아니라 열여덟살의 가슴작은 한계였는지도 모르지요. 기사를 오리다가도 문득문득 그 아저씨의 이름 하석윤을 생각하며, 여자 아이는 이런 것도 혹시 운명적인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아저씨가 있고, 아직 그 아저씨가 모르는 어떤 여자 아이가 있다고. 그 아저씨의 이름이 하석윤이고 여자 아이의 이름이 채서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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