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이 평탄한 경우는 드물다. 형제가 많을수록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이 있기 마련이다.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에우옌 왕자는 권좌를 탐하는 대신 예술을 택했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다녀온 후 풍경화가로 입지를 다졌다.
에우옌 왕자는 화가이자 동료 예술가들의 후원자로 살고자 했으나 유혹이 없는 건 아니었다. 28세가 되던 1893년, 노르웨이 국왕의 적임자로 추천됐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그림은 그해 여름 스웨덴 남동부 순드비홀름 성에 머무는 동안 그렸다. 17세기에 지어진 성은 그림에서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붉은 박공지붕을 얹은 노란 건물은 대도시의 화려한 궁전과 달리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권력에 대한 유혹과 예술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흔들렸던 걸까. 왕자는 맑은 여름날, 거대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흰 구름은 신의 계시나 현실을 벗어난 이상 등을 상징하지만 먹구름은 난관이나 불길한 예감을 암시한다. 그림에는 흰 구름과 먹구름이 반반씩 섞여 있어, 당시 그의 고뇌를 짐작하게 한다.
급진적인 사고와 경향을 추구했던 왕자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예술가로서뿐 아니라 많은 예술협회와 공공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스웨덴의 문화예술 발전을 도왔다. 30대 중반에는 스톡홀름 근교 발데마르수데에 대지를 사서 자신만의 예술의 집을 지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에 둘러싸인 한적한 섬 집에서 82세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작품 3500점과 다른 작가의 작품 450점 및 집과 부동산을 모두 국가에 기증했다.
사후 70년이 지났지만 왕자는 여전히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에우옌 왕자 발데마르수데’는 스톡홀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 중 하나다. 권력 대신 예술을 택한 왕자는 알고 있었던 듯하다. 권력은 잠시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