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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주연 임성미… “세상에 막 첫발 내디딘 느낌이에요”

14년 만에 주연 임성미… “세상에 막 첫발 내디딘 느낌이에요”

Posted March. 16, 2021 08:07,   

Updated March. 16, 202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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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떨려요. ‘개봉일에 조조로 혼자 영화관 가서 볼까?’ 생각 중이에요.”

 14년 차 배우의 현재 고민이다. 임성미(35). 이 낯선 이름이 극장 스크린에 ‘주연’으로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파이터’는 잘 여문 그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윤재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힘겹게 살아가는 탈북민 진아가 복싱을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담았다. 경계심이 강한 진아는 복싱 관장(오광록)과 코치(백서빈)를 만나며 조금씩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간다. 

 영화의 분위기를 끌고 가는 진아, 임성미를 11일 만났다. 그는 “세상에 막 첫발을 내디딘 느낌”이라고 했다. 파이터는 임성미가 극장 개봉하는 장편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그는 파이터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어릴 적 개그맨을 꿈꿨던 임성미는 중3 때 콩트를 보다가 연기를 접했다. 고교 시절 생애 처음 영화관에서 가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2003년)를 본 뒤 연기자의 꿈은 커졌다. 이후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장르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재학 시절 정희재 감독의 단편 ‘복자’(2008년)에 출연해 주목받았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년)에서 여고생 흉터(이미도)의 친구 역으로 장편 영화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 ‘헤다 가블러’(2012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년) ‘스타트업’(2020년)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갔다. 

 하지만 빼곡한 필모그래피에도 빈칸은 있었다. 2010년 연기를 그만두려 했다. 

 “연기를 할 때는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연기를 하지 않을 땐 뭘 할지 몰라 연락도 모두 끊고 술만 마셨어요. ‘이렇게 평생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요.”

 다시 털고 일어났지만 3년 뒤 무용에 빠져 무용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다.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첫 위기였던 2010년,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었다. 두 달을 홀로 걸으면서 자존감을 키웠다. 진로가 헷갈릴 때는 스스로 물었다. ‘무용을 시작한 건 춤을 위한 것이었나, 연기를 위한 것이었나.’ 그는 “세 보이지만 전형적인 ‘외강내유’형”이라면서 “아마 죽을 때까지 흔들릴 것”이라며 웃었다.

 파이터에서 임성미는 진아 그 자체다. 영화는 복싱 대회를 준비하며 감정 표현이 서툴던 진아가 차츰 마음을 여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몰입도를 높인다. 그는 “이방인이던 진아의 감정에 순간순간 이입하려 했다”고 했다. 그는 억척스러운 진아에게 어울릴 만한 의상도 스스로 선택했다.

“체육관에 버려져 있던 복싱화가 눈에 들어왔는데 마침 딱 맞았어요. 신기해 기념으로 가지고 있어요.”

 그는 한 달 넘게 ‘체육인’으로 살며 복싱 실력을 키웠다. 옌볜 출신이자 극 중 부동산 매니저로 나오는 이문빈 배우에게 북한말을 집중 지도받았다.

 “나이 드는 게 재밌어지려 한다”는 그는 다양한 플랫폼과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경주마 같은 배우는 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 작품을 보고 어떤 감정을 하나 안고 가셨으면 해요. 그러곤 ‘이 배우,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네’ 하고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