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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많이 짧아졌다

Posted July. 30, 20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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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작()으로 유명한 원로 시인 김종길 고려대 영문학과 명예교수(78)가 8년 만에 신작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를 펴냈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56년 동안 시를 썼지만 첫 시집 성탄제(1969년)를 포함해 하회에서(77년), 황사현상(86년), 달맞이꽃(97년), 그리고 신작 시집까지 불과 다섯 권의 시집을 냈을 뿐이다. 그가 자신의 시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지기()인 고려대 김우창 교수는 김종길 선생의 시는 과장된 감정의 시가 범람하는 오늘의 시단에서 가장 절제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시라고 평했다.

신작 시집에는 97년 이후 최근까지 쓴 시 90편 중 70편이 실렸다. 그는 평생 과작으로 일관했던 사람이 늘그막에 다작을 한 셈이니 노욕을 부린 것이나 아닌지 민망스럽다며 원래 시를 쉽게 쓰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편인데 늙으니까 전보다는 그런 게 좀 덜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노년의 삶을 관조하는 시,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명상이 주를 이룬다.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사물의 명암과 윤곽이/더욱 또렷해진다//가을이다//아 내 삶이 맞는/또 한번의 가을!//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해가 많이 짧아졌다.(가을 전문)

시집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 해가 많이 짧아졌다는 노년을 주제로 한 시, 2부 길을 떠나서는 고향인 경북 안동과 미국 일본 영국 등을 여행하며 쓴 시, 3부 새벽에 잠이 깨어는 노년에서 죽음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 감성을 투영한 시들이 수록됐다. 특히 3부에서 그는 나무들이 한꺼번에 우수수 잎을 떨구듯 먼저 떠나보낸 많은 벗과 친지들에 대한 추억을 통해 머지않아 자신도 맞닥뜨릴 죽음의 얼굴을 차분히 직시하려 한다.

97년 박재삼 시인의 영결식 날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그는 내가 비행기에 앉아/그대를 생각하며 태평양을 건널 때/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느 하늘을 날았을까(떠나가는 길) 하고 묻는다.

60년 지기였던 한 피아니스트 친구의 영결식에서는 내가 지은 가사에 곡을 붙여/피아노로 연주하던 그의 길숨한 손가락(손가락)을 잡아보고 쓰다듬어 본다.

여린 새잎으로, 또는 짙은 녹음/더러는 떡잎이 다 되어 알게 되었건만/비바람, 서릿발 속에서도 한결같이 서로 염려하고 의지하던 그들//오늘도 찬바람 부는 저무는 하늘 아래/나 홀로 가지 끝 마지막 잎새 되어/떨고 있네.(마지막 잎새)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 죽음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시인은 죽음도 크게 보면 하나의 자연현상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노시인도 가장 마지막에 실은 (부부)라는 시에서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을 소망을 하늘에 바친다.

오십년이 넘도록 하루같이 함께/붙어다니느라 비록 때묻고 이 빠졌을망정//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깨어지더라도/함께 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강수진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