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선을 끝으로 은퇴 선언 볼트

　거의 모든 카메라가 그를 향했다. 6만 관중의 시선도 그를 쫓았다. 기립박수도 함께 따랐다. 자메이카 국기를 들고 트랙을 돌았다. 트랙에 입도 맞췄다. 쏟아지는 팬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했고,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번개 세리머니’도 보여줬다. 그가 결승선을 지난 뒤 벌어진 장면들은 이전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의 이름이 전광판 맨 윗자리에 뜨지 않았다는 것만 빼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군림해 온 ‘번개’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가 선수로서의 마지막 100m 레이스를 1등으로 마무리하지 못 했다. 볼트는 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남자 결선에서 9초95의 기록으로 3위를 했다. 볼트가 메이저 대회(세계선수권, 올림픽) 100m에서 우승을 놓친 건 부정 출발로 실격된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두 번째이다. 저스틴 게이틀린(35)이 9초92로 1위, 크리스천 콜먼(21·이상 미국)이 9초94로 2위를 했다.

　출발이 늦었던 볼트는 전성기 때처럼 50∼60m 이후 치고나가는 막판 스퍼트를 보여주지 못 했다. 볼트는 결선 진출자 8명 중 출발 신호에 반응하는 시간(0.183초)이 두 번째로 길었다. 원래도 출발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볼트는 2011년 대구세계선수권대회 100m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한 뒤부터 ‘안전 출발’에 신경을 많이 썼다. 볼트는 “출발이 늦었다. 예전에는 레이스 중에 (늦은 출발을) 만회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 했다”고 말했다.

　올 시즌 볼트는 100m에서 기록이 좋지 못 했다. 이번 대회 전까지 3차례 레이스에서 10초대를 두 번이나 기록했다. 볼트는 4월 절친한 동료였던 영국의 높이뛰기 선수 저메인 메이슨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뒤 충격으로 한동안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그럼에도 팬들은 볼트의 화려한 피날레를 기대했었다. 그동안 볼트가 메이저 대회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볼트는 세계선수권에서 11개, 올림픽에서 8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10년 가까이 메이저 대회에서는 불패의 레이스를 펼쳐 왔다. 하지만 볼트는 마지막 100m 레이스에서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을 찍는 데 만족해야 했다.

　볼트는 익숙지 않은 패자의 경험을 하고도 담담했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볼트는 “게이틀린은 대단한 경쟁자다. 콜먼은 어린 선수이지만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 그런 선수들에게 졌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은퇴를 번복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볼트는 게이틀린에게 축하의 인사도 건넸다.

　볼트는 칼 루이스와 모리스 그린(이상 미국)이 달성한 세계선수권대회 100m 3연패에는 실패했지만 개인 통산 메달 14개(금메달 1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로 이 부문 타이를 기록했다. 자메이카 출신의 여성 스프린터 멀린 오티(슬로베니아·은퇴)가 14개(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7개)를 땄다. 볼트는 13일 400m 계주에서 역대 최다인 15번째 메달에 도전한다. 볼트가 선수로 뛰는 마지막 경기다.　

이종석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