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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일)

Posted February. 13, 201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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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했다. 연단에서 강연 중이던 울랄라세션 리더 임윤택 씨(항년 32세)에게 한 학생이 던진 질문 탓이다.

아픈 게 거짓말이란 소문이 있던데 정말이에요?

기자는 차마 묻지 못했는데 학생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던졌다. 짜증스러웠다. 임 씨는 웃으며 핫(hot) 한데요라고 했다. 그러곤 칠판에 질문1. 아픈 게 거짓말!이라고 썼다. 진작 물어볼 걸 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지난해 3월 임 씨가 학교폭력 예방 강사로 서울 단국공고를 찾았을 때 일이다.

2012년 3월 17일자 A31면 참조

그날 500여명이 들어찬 학교 대강당은 임 씨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베이지색 재킷 주머니에 꽂은 붉은 장미꽃 때문인지 그의 안색은 밝아 보였다. 그는 손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연단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학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정반대의 상황을 막으려는 몸부림 같았다. 어쨌든 그는 항암치료 중인 말기 암 환자라면 이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했다.

그가 질문에 답했다.

위암 4기는 생존율이 5.5%에요. 괴롭다고 인상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예의없는 학생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질문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무섭지 않아요? 그는 전혀 두렵지 않다. 내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여러분보다 오래 살 수도 있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하루를 살아도 주변 사람을 위해 가치 있게 살자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당당함과 명랑함을 잃지 않은 임 씨의 몸짓과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자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가보다. 이 학교 선도 담당 여인진 교사는 12일 강연 이후 학생들이 다른 친구를 배려하고 거친 언행을 자제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그가 알면 얼마나 기뻐할는지.

하지만 11일 위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악플에 치를 떨어야 했을 그를 생각하면 분노가 멈추질 않는다. 밴드를 홍보하려 암 환자로 행세한다며 암드립이란 저주를 퍼붓는 누리꾼들도 있지 않았나. 결국 임 씨는 악플러들의 거짓행태를 죽음으로 입증한 셈이 됐다. 악플러들은 이제 아내와 딸을 남기고 무책임하게 죽었다며 비난한다. 이런 망나니같은 경우를 그냥 둬야 하는지, 답답하다. 고인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을 그들이 배설하는 이 파괴적 미움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악플은 지겨운 병폐다. 12일 인터넷 공간에서는 임 씨에게 악플을 단 사람의 신상이 다시 털리고 있다. 잘됐다고 해야할지, 안타까워 해야할지 모를 일이다. 죽은 사람에게 악성 댓글을 달아 부관참시()하고 성폭행을 당한 아동에게 음란댓글을 달아 인격살인하는 행위는 또 어떤가.

탤런트 김희선(36여) 씨도 지난해 12월 방송 토크쇼에 나와 네살배기 딸 연아에 대한 악플 때문에 상처를 받아 이민까지 결심했었다며 어린 딸에게 퍼붓는 악플에 대한 고통을 토로할 정도였다. 일반인도 예외가 아니다. 악플러가 결집해 신상털기에 나서면 다리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다. 최근 여대생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관련 상담을 올렸다가 얼굴, 실명, 학교, 페이스북 주소, 사는 곳 등 개인정보가 모조리 악플러들 손에 공개됐다고 한다.

키보드 워리어(상습적 악플러)는 명문대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한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커뮤니티에서는 재학생 간에 다툼을 벌인 이 학교 학생의 신상이 악플러 손에 공개됐다. 악플러들은 사건 발생 100일이 지난 지금도 그의 동향을 인터넷에 올리고 조롱하고 있다니 암담하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의 말이다. 사법기관이 현실에서 벌어진 상해 사건만큼 악플 같은 사이버상 폭력을 무겁게 볼 필요가 있다. 악플러에게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민사상 막대한 배상금도 물리도록 해야 한다.

맞는 말씀이긴한데, 처벌이전에 상식을 짓밟는 세태가 한탄스럽단 생각이 든다. 이 나라는 악플러에 의한 악플러의 나라가 되가는 건 아닐까.



박훈상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