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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민

Posted January. 03, 200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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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공식 홈페이지 회원게시판에 지난해 12월 30일 한 네티즌이 이문열 이민 간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인터넷에서 가져왔다는 이 글은 원래 한 뉴질랜드 교민이 쓴 것으로 돼 있다. 글쓴이의 아버지가 소설가 이문열씨의 오랜 친구라며 부산에 사는 아버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그가 이민 간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선거결과에 실망해서라는 것이었다. 다른 네티즌이 2일 같은 게시판에 퍼 올린 글에는 확인해보니 새로운 보금자리는 영국 영주권을 땄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서 이문열씨한테 직접 들으셨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씨는 어이가 없다며 부인했다고 한다.

민주당의 천용택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국방위에서 한나라당 의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이회창이 대통령 되면 나는 이민 갈 거야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대선 때마다 시민들이 농처럼 입에 올리곤 하지만 국회의원이 공석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75년 동아일보에 대한 독재정권의 광고탄압 때는 S이라고 밝힌 독자가 야 너마저 무릎꿇으면 진짜 이민 갈 거야라는 광고를 낸 일도 있다. 그런 일만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강렬한 바람의 표현을 그렇게 했다. 하긴 영국의 찰스 왕세자도 노동당 정부가 귀족들의 전통 스포츠인 사냥개를 이용한 여우사냥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민 갈 것이라고 했다던가.

전문가들은 1903년 1월 13일 미국 증기선 갤릭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난 102명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을 근대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해외이민에 나선 시발점으로 보는 모양이다. 조선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미국으로의 초기 이민은 모두 이 땅의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실현이었다면 60년대 이후의 이민은 대개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한 이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다르다. 사업에 실패해서, 바람이 나서, 아들딸의 교육을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하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그러니 대통령 싫어서 가는 이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민은 기본적으로 다른 민족과의 융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단순히 언어와 관습의 융합뿐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인종적 융합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의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꿈의 실현을 위해서 이민을 간다면 또 모른다. 단순히 이 나라의 무언가가 싫어서 떠나는 감정적 이민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싫어하는 존재에 대해 여기 남아서 할 일은 없는 것인가.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