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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순 ‘국민오빠’ 송해눈물

Posted February. 10, 2016 07:11,   

Updated February. 10, 20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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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향민 송해(91)는 설날 가수 송대관의 모친상에 문상을 갔다. 상가에서 소주잔을 나누다 북녘 땅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에 술기운이 올랐다. 송해는 연백평야가 있는 황해도 재령이 고향이다. 입버릇처럼 연백을 김제만경과도 안 바꾼다고 한다. 김제만경의 외애밋들보다 더 너르다는 연백의 ‘나무릿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전날 북의 미사일 불장난으로 그의 마음은 더 무거웠으리라.

 ▷송해는 1·4후퇴 직전인 1950년 12월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때 23세, 어머니는 60세. 구월산의 인민군이 밤이면 마을로 내려왔다. 그때마다 젊은이는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 “한 이틀이면…” 하고 떠난 것이 생이별이 됐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배 타고 연평도로 가서 미군 상륙함(LST)에 몸을 싣고 “하늘로 가는지 어디론지도 모르고 부산까지 왔다”고 했다. 허허바다 위에서 이름을 본명 복희 대신 바다 해(海)로 고쳤다.

 ▷살아 계시면 128세, 8년 전까진 노모의 생사를 몰라 차례도 지내지 않았다. 이번 설에는 “꿈에라도 오실까” 목메어 불러봤다. 2년 전 송해 선생과 함께한 저녁자리에서 고향 연백 얘기가 나왔다. 술이 몇 순배 돌던 중 이상한 느낌에 힐끔 봤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작년 3월 그가 녹음한 ‘유랑청춘’ 가사가 애절하다. ‘눈물어린 툇마루에 손 흔들던 어머니, 하늘마저 어두워진 나무리 벌판아, 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 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칠십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결혼하고 싶은 남성 1위인 ‘국민오빠’ 송해. ‘건강하고, 돈 잘 벌고, 삼식이가 아니고, 매주 전국의 특산품 가져와서’라는 이유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모곡(思母曲)에 애끓는 송해의 꿈은 통일이 되면 고향에서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는 것이다. BMW(버스 지하철 걷기)를 애용하는 그는 건강하다. 백 살 넘게 살 것이다. 동트기 전처럼 남북관계가 어둡다. 그러나 핵을 가진 북이 불장난을 하다 망해 그의 꿈이 이뤄질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최 영 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