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투병 파병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청와대 내의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3월 비전투병 파병 때와는 달리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파병의 절대적이고 최우선적인 고려 요소는 아니라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전()은 무엇보다 신중한 판단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에서부터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노 대통령은 18일 광주 전남지역 언론사와의 회견에서 파병 문제의 고려 요소로 국민의 인식 국가적 이익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또는 전 세계 국민에 대한 한국의 이미지 향후 아랍권과의 관계 등 네 가지를 들었다. 정부 내의 파병 찬성론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한미동맹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나종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도 18일 우리의 국익과 안보도 중요하지만 파병이 이라크 국민에게 어떤 이득을 주느냐는 점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고 말해 향후 주권을 회복하게 될 이라크와의 관계에도 상당한 강조점을 두었다.
이 같은 청와대의 기류는 3월 비전투병 파병을 결정했을 당시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 관계의 중요성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 나가는 게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밝힌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는 3월 당시의 동맹국인 미국을 지지한다는 것만으로는 이번 파병의 명분을 세울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청와대가 상대적으로 대미관계보다는 국제사회의 위상이나 이라크를 포함한 아랍권과의 향후 관계를 주요 고려 요소로 꼽고 있는 데에는 이번 파병이 그 어느 때보다 명분과 형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이번 파병은 전투병을 보내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국제사회에서 호전적인 국가로 비칠 수도 있다며 미국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라크 문제가 해결된 이후 다른 중동국가와의 관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청와대는 유엔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와 NSC 관계자들이 앞으로 2주일 정도가 지나야 파병 여부의 가닥이 잡힐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결론도 나오기 힘들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유엔 결의가 어떤 식으로 결론 나느냐가 파병 문제의 최대 고비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미국 변수를 가급적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것에는 정치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에 비판적이면서 파병 반대 의견이 우세한 노 대통령 지지층의 이탈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이번 파병 문제의 해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주요 고려 사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김정훈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