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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처녀 수십만원에 성 노예로 팔려

Posted December. 15, 200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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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함경북도 회령의 한 묘목회사에 다니던 L(35여) 씨.

2001년 7월 초 한 낯선 남자가 그녀의 퇴근길을 가로막았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살기 힘들지 않으냐. 중국에 가면 돈을 제법 벌 수 있다고 제안했다. L 씨는 귀가 솔깃했다.

1997년 부모가 예방주사 부작용과 영양실조 등으로 한꺼번에 돌아가신 후 네 살 아래 여동생과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오던 터였다. 회사에서는 일만 시키고 월급은 주지 않았으며 여동생도 몸이 성치 않아 누워 있기 일쑤였다. 자연히 이틀에 하루꼴은 끼니를 거른 채 지내야 했다.

어디 간들 이만 못하랴라는 생각에 그는 1주일 뒤 밤에 가슴까지 물이 차는 두만강을 건너 또 다른 탈북 여성 2명과 함께 중국으로 넘어왔다. 룽징()의 한 민가에서 머물던 일행은 이틀 후 각자 다른 농촌으로 팔려 갔다.

옌지()에서 기자와 만난 L 씨는 브로커에게 속아 벽촌의 늙은 노총각한테 팔려가 동생과 연락도 못한 채 아무런 희망 없이 살고 있다며 숨을 쉬니까 살아 있는 것이지 사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여전히 불법 체류자 신분인 그녀는 인터뷰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팔린 후 반감금 상태로 지내는 탈북 여성들=회령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지난해 2월 중국 싼허()로 넘어 온 G(26) 씨는 헤이룽장() 성의 우창()으로 팔려 간 후 깜짝 놀랐다.

62세의 아버지와 32세의 큰아들 등 남자 5명만 있는 이 집에는 자신이 유일한 여성이었던 것. 우려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 4명이 매일 밤 순서를 정해 놓고 잠자리를 강요했다. 몸이 아프거나 생리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위에는 마을도 없어 누구와도 접촉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짐승 같은 생활이 8개월가량 흘렀다.

G 씨는 자신에게 동정심을 보이던 둘째 아들을 꼬여 인근 읍내로 나들이하자며 나온 뒤 도망쳐 노예생활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둔화()를 거쳐 옌지의 한 구호기관을 찾은 G 씨는 차라리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울먹였다. G 씨의 사연을 전한 구호기관 관계자는 그에게 여비를 주어 보냈는데 북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옌지에서 만난 또 다른 탈북 여성 K 씨와 C 씨도 낮에는 소처럼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하고 밤에는 노리개가 돼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2000년 6월 탈북해 왕칭()에 팔려 온 K 씨는 같은 마을에 온 다른 탈북 여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남자들에게서 집단 구타를 당했다고 전했다.

탈북 여성들은 주변의 감시는 물론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될까 봐 두려워 도망치지 못한다고 이들은 말했다. 또 아이가 생기면 아이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는 것.

허베이() 성 친황다오() 시에는 10여 가구에 탈북 여성이 집단 매매돼 왔지만 너무 외진 데다 감시가 심해 반감금 상태로 살고 있다고 이곳의 한 탈북 여성이 털어놨다.

지역과 연령 등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탈북 여성 인신매매 시장=팔려 온 탈북 여성 P 씨 손에 들어온 돈은 2000위안(약 26만 원). 브로커에게는 8000위안(약 104만 원)이 돌아갔다. 또 다른 탈북 여성 K 씨는 비교적 탈북자 매매 초기에 팔려 와 1000위안(약 13만 원)만 받았다.

옌지의 한 브로커는 탈북 여성을 살 수 있다는 정보가 중국 전역에 퍼지면서 지역별로 서로 다른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에는 허베이 성의 주문 가격이 20대 여성 기준으로 2만 위안(약 260만 원)으로 가장 높고 옌지 주변 농촌이 20003000위안(약 26만39만 원)으로 가장 낮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허베이 성의 경우 광산개발 등으로 돈이 도는 데다 총각들이 몰려들고 있어 탈북 여성들의 인기가 높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나이 등 조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시장도 동북 3성 일대에서 내륙 쪽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한편 중국 농촌으로 팔려 간 북한 여성들은 탈북자 신분이어서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할 수 없다. 중국 남자와의 사이에 5세된 아들을 두고 있는 H 씨는 지금 남자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싶어도 탈북자는 결혼식은 물론 호적에도 올릴 수 없어 앞으로 유치원이나 학교 학부모 모임에 얼굴을 내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