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5일 별세한 배우 안성기의 영결식이 진행된 9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고인의 장남 안다빈 씨가 부친의 서재에서 발견한 33년 전 편지를 낭독하며 오열하자 추모객들이 일제히 눈시울을 붉혔다. 41세이던 고인이 유치원생 다빈 씨에게 쓴 이 편지는 “네가 이 세상에서 처음 태어난 날… 눈물이 글썽거렸지”로 시작해 “겸손하고 정직하며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당부로 마무리됐다. 유족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다빈 씨는 “아버지는 누를 끼치는 일을 경계하는 인생관을 갖고 계셨다”며 “천국에서도 영화를 생각하고 출연 작품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영결식엔 배우 현빈 주지훈, 가수 바다, 임권택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 유족과 지인, 연예계 후배 등 6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떠나보냈다. 배우 정우성은 조사에서 영화 ‘무사’(2001년)를 함께 촬영할 당시의 고인을 떠올렸다. 그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심과 내세우지 않으려는 절제도 있었다. 선배님은 누구보다 향기롭고 선명한 색으로 빛나는 분”이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고인과 13편의 작품을 함께했던 배창호 감독(장례위원장)은 “한국을 대표한 연기자로서 성실한 연기자의 표본”이라며 “그는 작품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결식장에서 ‘바람 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등 고인의 수많은 출연작 장면이 잇달아 상영되자 참석자들은 숨을 죽인 채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에 앞서 이날 오전 명동대성당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고인의 장례미사를 주례했다. 정 대주교는 “안성기 사도 요한 형제님은 고단한 시절 국민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해 주신 분”이라며 “생명위원회와 ‘바보의나눔’ 등 교회의 다양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나눔과 책임의 삶을 실천했다. 그의 신앙은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인간 존중과 따뜻한 품위를 깊이 새겨 주었다”고 했다. 고인은 명동대성당에서 1985년 혼인성사를 받았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제1독서를 봉독하기도 했다.
이날 고인의 소속사 후배인 정우성이 영정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들고 앞장을 선 가운데 설경구 유지태 박해일 조우진 주지훈 박철민 등 동료 배우들이 운구를 맡아 장지인 경기 양평의 별그리다로 향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날 유튜브 채널 ‘한국고전영화’를 통해 고인의 1980∼1990년대 대표작 10편을 상영하는 온라인 추모전을 열었다.
김태언 bebor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