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햇빛이 드는 기차 안, 한 여인이 고개를 떨군 채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고, 옆에는 낡은 보따리 하나가 놓여 있다. 군복을 입은 두 남자가 뒤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다. 대체 여자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리 비참한 신세가 된 걸까.
‘또 다른 마르가리타’(1892년·사진)는 ‘빛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의 경력에서 전환점을 이룬 작품이다. 그는 피카소가 등장하기 전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눈부신 해변의 일상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시한 작품도 여럿 남겼다. 이 그림 역시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사이를 달리던 3등칸 기차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장면을 토대로 한다. 두 명의 시민 경비대가 재판을 받기 위해 이송 중인 여성 죄수를 호송하고 있다. 마르가리타라는 이름은 당시 발렌시아에서 매춘부를 뜻하는 속칭이자, 괴테의 ‘파우스트’ 속 영아 살해범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그림 속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죽인 매춘부였을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당시 소로야는 두 살배기 딸을 둔 아버지였기에, 그가 마주한 광경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기차 안은 차갑고 휑하다. 검은 옷을 입은 세 인물 사이에는 대화도, 온기도 없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은 오히려 여인의 수치심과 비참함을 부각한다. 여인은 법정으로 향하고 있지만, 사회라는 이름의 법정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옥 같은 삶의 형벌을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소로야는 이 작품으로 스페인과 미국 전시에서 큰 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그는 세상에 묻고 싶었을 것이다. 죄의 대가는 개인이 감당한다 해도, 저 여인을 벼랑 끝으로 내몬 가난과 절망의 굴레는 누가 만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오늘도 또 다른 마르가리타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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