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구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추가 기울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전술핵 훈련을 벌였던 러시아는 이에 대해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알아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8일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 국빈방문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 군사기지를 무력화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할 것이냐”고 말했다. 슐츠 총리 역시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상 모든 권한을 갖고 있고, 이를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동의의 뜻을 밝혔다.
양국 정상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여러 유럽 지도자들이 ‘러시아 본토 공격 금지’의 철회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4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나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 군사시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도 이달 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서방 무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현지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의 ‘큰 손’인 미국이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해 당장 전략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다만 여러 유럽 지도자들이 계속 가세하며 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유럽에서 이런 목소리가 커진 이유는 2년 3개월을 넘어선 전쟁에서 미국의 무기 지원 공백을 틈타 러시아의 영토 점령이 거침없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7일 AFP통신 인터뷰에서 “서방이 제공한 무기를 러시아 영토 공격에 쓸 수 없다보니 러시아가 전쟁에서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자국 본토 공격론에 대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날을 세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 국가들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놀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며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은 러시아 영토 공격 전에 꼭 명심할 게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면 전술핵 등으로 반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조은아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