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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전사’ 모드리치, 가장 빛난 별

Posted July. 14, 2018 07:28   

Updated July. 14, 201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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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6세 꼬마 루카 모드리치(33)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 같은 현실과 마주했다. 당시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의 독립 전쟁이 시작된 때였다.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시죠?” 부모님이 일터에 나갔을 때마다 자신을 돌봐주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모드리치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할아버지를 포함해 크로아티아인 6명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저지하던 세르비아 반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모드리치는 가족과 함께 살던 집까지 불에 타 부모님과 함께 피란처로 사용되던 호텔을 전전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호텔 주위에서 수류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쳤다. 전기는 끊겼고 급수도 중단됐다. 하지만 축구는 모드리치가 불우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는 호텔 근처 주차장 등에서 쉴 새 없이 공을 찼다. 당시 모드리치가 머물렀던 한 호텔의 직원은 영국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속에서도 꼬마(모드리치)는 꿋꿋이 드리블 연습을 했다. 호텔 직원들 모두 아이의 담대함에 경악했다. 폭탄이 터져서 깨진 창문보다 꼬마가 축구 연습을 하다가 깨뜨린 창문이 더 많았다”고 회상했다.

 전쟁의 아픔은 모드리치를 ‘발칸 전사’로 성장시켰다.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 사람이 만들어 내는 기적과 성공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전쟁의 상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더 강해졌다. 우리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존재다”라고 말한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모드리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세계 최고 중원 사령관’으로 거듭났다. 미드필더 모드리치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크로아티아의 사상 첫 월드컵 결승행을 이끌었다. 크로아티아가 치른 6경기 중 3경기에서 모드리치는 경기 최우수선수(MOM)에 선정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모드리치는 월드컵에 출전한 모든 선수 중 가장 많은 거리(63km)를 뛰었다. 강인한 투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 최고 선수는 모드리치다. 현대 축구에서 미드필더에게 요구되는 상대의 압박을 벗어나는 능력, 시야, 창의성 등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했다.

 모드리치의 체구는 유럽 선수 치고는 작은 편(172cm, 66kg)에 속한다. 어린 시절에는 체구가 작아 지역 유소년 팀 입단에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종’인 그는 끊임없는 훈련과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한계를 극복했다. 모드리치는 “축구는 힘과 사이즈(건장한 체격)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디나모 자그레브(크로아티아)에서 뛰던 모드리치가 200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 입단했을 때 크로아티아 언론은 모드리치가 몸싸움이 치열한 EPL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모드리치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체격이 작아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은 유소년 때부터 수차례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오기가 생겼고 나는 언제나 주위의 편견을 이겨냈다.”

 모드리치는 토트넘에서 당당히 주전을 꿰찼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59경기에 출전해 17골을 터뜨렸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2012년 8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토트넘에서 모드리치를 지도했던 해리 레드냅 감독은 “모드리치같이 성실한 선수를 지도하는 것은 모든 감독의 꿈이다. 훈련장에 들어선 모드리치는 자신에게 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가정한 두 가지 상황에서 수비를 제칠 개인기와 패스를 몸이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했다”고 말했다.

 상체 골격이 작아 국내 팬들로부터 ‘모드리치 공주’로 불리기도 하는 그이지만 하체 근육은 탄탄하다. 모드리치는 “튼튼한 허벅지 등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단단한 하체로 공을 키핑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게서 쉽게 볼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군에서 항공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모드리치의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모드리치를 축구학교에 보내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크로아티아의 주장인 모드리치가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자국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다면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레전드 다보르 슈케르는 “모드리치는 그라운드와 라커룸에서 정신적 지주로 팀을 훌륭히 이끌고 있다. 내게도 발롱도르 투표권이 있다면 모드리치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발롱도르는 축구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해외 베팅사이트에서 모드리치의 발롱도르 수상 확률은 월드컵 전만 해도 5위권이었지만 크로아티아가 결승에 오르면서 호날두에 이어 2위까지 뛰어올랐다. 모드리치는 “지금은 개인상 수상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우선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