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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에도 꽃 한송이 피우듯 심혈”…박맹호 회장 별세, 애도 물결

“책 한권에도 꽃 한송이 피우듯 심혈”…박맹호 회장 별세, 애도 물결

Posted January. 23, 2017 07:11   

Updated January. 23, 2017 07:27

 “어떤 책을 내라고 지시하신 적이 없다. 직원들의 제안을 신뢰하고 지지한 뒤 결과물에 대해 짧게 조언하셨다. 함께 일하며 늘 행복했던, 든든한 ‘선장’이었다.”

 22일 별세한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모인 문인들과 출판계 관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출판계에 강직한 리더의 조언이 절실한 시기에 ‘영원한 현역’이던 박 회장님을 잃으니 황망할 따름”이라며 애도했다.

 고인은 충북 보은군 비룡소마을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까지 살았던 비룡소는 1994년 만든 민음사 계열 어린이책 브랜드명이 됐다.

 그의 젊은 시절 꿈은 소설가였다. 1952년 서울대 불문학과에 입학한 고인은 이듬해 시사일간지 ‘현대공론’ 창간기념 문예공모에 ‘박성흠’이란 필명으로 단편소설 ‘해바라기의 습성’을 응모해 당선됐다. 1955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자유풍속’을 응모했지만 자유당 정부를 풍자한 내용이 문제가 돼 탈락했다.

 이후 국회의원에 출마한 부친 박기종 씨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지내다 1966년 5월 서울 종로구 청진동 10m² 남짓한 크기의 옥탑방에 민음사를 열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저녁마다 그 좁은 옥탑방이 고은 이문열 등 작가들과 동년배 출판인들로 복닥거렸다. 종로서적 구경하고 나서 민음사에 들러 한잔 얻어먹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적잖았다”고 회고했다.

 처음 출간한 책부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 작가 오카 마사히로가 쓴 인도 요가 책을 신동문 당시 신구문화사 주간이 한글로 옮긴 책을 내 1만5000여 권을 팔았다. 번역서로 첫 삽을 떴지만 이후 일본서 번역 위주의 당시 출판계 분위기를 따르지 않고 우수한 국내 작가의 글을 한글에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소개하는 일에 매진했다.

 고인은 1970년대 고은 시인, 문학평론가 김현 등과 의기투합해 ‘세계 시인선’과 ‘오늘의 시인 총서’를 내며 비인기 장르였던 시집 출판 붐을 일으켰다.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김춘수의 ‘처용’, 천상병의 ‘주막에서’, 고은의 ‘부활’, 박재삼의 ‘천년의 바람’,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등이 이 총서를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이때 단행본으로는 처음으로 가로쓰기 편집과 국판 30절 판형(가로 12.5cm, 세로 20.5cm)을 도입했다. 2006∼2014년 민음사 대표를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세로쓰기는 우리 출판물에 남겨진 대표적인 일제 잔재였다. 박 회장님은 한국 출판계가 일본 출판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1976년에는 계간 문학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으며 이듬해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했다. 1981년 제정한 ‘김수영 문학상’도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문학뿐만 아니라 문예이론, 사상, 학술 서적 출간에도 정성을 쏟았다. 197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발간한 ‘이데아 총서’를 통해 발터 베냐민의 문예이론 등 우수 해외 서적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1983∼1999년에는 ‘대우학술총서’ 424권을 발간했다.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는 “회사 경영도 탁월했지만 출판인협회 활동 등 출판업계를 이끄는 행정가 역할을 맡아 멀리 내다보는 혜안으로 후배들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주셨다”고 했다. 고인은 2005년 45대 출판인협회 회장으로 당선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윤철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열흘 전 병원 문안을 드렸다. 거동이 힘들어 보였지만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빛 대화’는 그대로였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니 길을 밝혀주던 큰 등불을 잃은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손택균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