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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순혈주의

Posted January. 28, 201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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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태프트 미국 대통령은 특이하게도 대통령을 지낸 뒤 연방대법원장이 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태프트는 구한말 일본의 사실상 조선 속국화()를 묵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장본인이다. 대통령으로서는 별로였지만 대법원장은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서 당시만 해도 의원이나 주지사 혹은 장관을 하다가 대법관이 되는 경우는 흔했다.

미국도 법원의 전문성이 강화돼 1975년 이후 임명된 대법관은 모두 연방항소법원(일종의 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한 경험을 갖고 있다. 최근에 다시 예외가 생겼는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0년 임명한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이다. 케이건은 하버드 로스쿨 최초의 여성 학장 출신으로 임명 당시 법무부 송무차관이었지만 법관 경력은 전혀 없다. 그러나 법조일원화가 된 미국은 법관이라도 검사 변호사 교수 관료 등 다양한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다.

양 대법원장은 최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 후임으로 조희대 대구지법원장을 임명 제청했다.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대법관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구성원 14명이 판사 출신 일색이다. 대법원은 양창수 대법관은 교수 출신이고, 박보영 대법관은 변호사 출신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양 대법관은 판사를 교수로 내보내 연구생활을 하게 한 뒤 다시 대법관으로 불러들인 대표적 인물이고, 박 대법관은 부장판사까지 17년간 판사 생활을 했다. 대법관 모두 법원의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에 검사 몫 대법관 자리가 하나 있었으나 안대희 대법관 이후 공석이다. 검사도 법조 3륜()을 구성하는 한 바퀴다. 사법연수원에서 가장 우수한 몇 명은 수료와 동시에 로펌으로 직행한다. 교수 중에도 우수한 인물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는 한번 판사가 되면 대체로 판사만 쭉 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3명을 빼고는 모두 50대 후반의 서울대 판사 출신 남성이다. 대법원 구성원을 보다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