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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저히? 상당히?... 모호한 법령 기업은 불안하다

현저히? 상당히?... 모호한 법령 기업은 불안하다

Posted September. 03, 20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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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7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 A사의 경영진은 요즘 일감 몰아주기 금지 조항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워졌다. 절삭공구 제조원가를 낮추고 판매를 원활하게 하려고 국내외에 17개 계열사를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원래 공정거래법에는 계열사에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면 안 된다고 돼있었는데,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뀌었습니다. 도대체 차이를 알 수 없으니 불안해질 수밖에요.

A사의 전무 B 씨는 결국 법을 해석해 집행하는 공무원의 권한만 강화시켜주는 것 아니냐며 담당 공무원에게 로비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법조항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현저한, 상당한, 부당한 등 모호한 문구를 근거로 기업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기업의 고충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주는 법과 그 시행령을 분석한 결과 각각의 법령에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144개까지 모호한 표현이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석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법인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근로기준법과 그 시행령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공정거래법(이하 시행령 포함)에는 부당, 현저, 상당한 등 모호한 표현이 총 144개에 이르렀다. 근로기준법은 13개였으며, 법인세법에는 27개, 조례특례제한법에는 11개의 모호한 표현이 담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계는 이런 모호한 표현이 공무원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재량권 남용을 가능케 해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있다. 같은 사안이라도 경우에 따라 다른 처분이 내려질 수 있고 불필요한 소송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의 비용을 높인다는 것이다.

박창규김용석강유현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