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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마당의 분노

Posted November. 18, 201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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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마당은 1990년대 중후반 배급제가 무너지고 수백만 명이 굶어죽으면서 생겨났다. 살아남기 위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하기 시작하다가 화폐를 매개로 하는 매매로 발전했다. 지금은 중국을 거쳐 들어온 한국 제품의 상표를 적당히 지워서 팔아 제법 큰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 상표를 완전히 지우면 제값을 못 받는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단행한 화폐개혁은 시장이 만들던 부()를 권력이 빼앗으려는 시도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주민이 시장을 토대로 자력갱생했다면 북한 권력은 해외원조에 기대 연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급제가 붕괴된 시기에 북한 권력은 개입정책을 펼친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와 햇볕정책을 펼친 한국 정부를 상대했다. 핵과 미사일을 들고 위협해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중유를, 한국 정부로부터는 돈과 쌀을 받아냈다. 이 시기 북한의 민간 경제는 다양한 시장을 창출했다. 2001년 중국으로 나온 탈북자가 한국으로 가기 위해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하는 돈은 1000만 원이었다. 2만 탈북자 시대가 열린 지금은 100만 원대로 떨어졌다. 탈북자 빼내기 사업에 뛰어든 브로커의 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세금을 내지만, 북한 시장에는 세금이 없다. 규제와 세금이 없다 보니 부의 축적이 빨랐다. 눈치 빠른 관료들도 시장에 뛰어들어 권력을 배경으로 돈을 벌었다. 1,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유엔 제재,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퍼주기의 중단으로 밖에서 들어오던 돈줄이 마르자, 북한 권력은 시장이 창출하는 부를 뺏기 위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새 화폐로 바꿔줄 수 있는 금액을 한정해 장마당 사람들이 재산을 날린 반면 권력은 손쉽게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화폐개혁 후 심각한 인플레가 일어나 민심이 흉흉해지자 북한 권력은 천안함 사건을 일으켜 위기를 조성했다는 얘기도 있다. 군과 경찰을 앞세워 위압적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민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민간이 생존을 위해 만든 시장을 짓누르려는 김정일 정권의 폭압이 언제까지 먹혀들지 두고 볼 일이다. 시장을 체험한 주민은 북한의 세습 정권에 위협적 존재다.

이 정 훈 논설위원 hoon@donga.com